미국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을 개별 기업 중심에서 산업 전반으로 확대한다. '우회로'까지 막아 기술패권 전쟁에서 중국의 싹을 밟아놓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와 관련 기술, 장비 등의 수출을 제한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같은 기준을 상무부가 지정하면 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누구나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식이다. 통제 근거는 이런 반도체를 중국군이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국가안보다.
이제까지 미국은 특정 기업의 일정한 제품을 중심으로 대중 반도체 수출을 통제해 왔다. 상무부는 지난 7월 반도체 장비업체인 KLA,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등 3개 사에 14㎚(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급의 반도체 생산용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때 허가를 받도록 조치했다.
상무부는 또 최근 엔비디아의 GPU인 A100과 연말께 나올 후속 제품인 H100, AMD의 동급 GPU에도 같은 제한을 내렸다. 엔비디아의 A100은 중국 AI용 GPU 시장에서 점유율 95%를 차지하고 있다. 비런테크 등 중국 토종 업체들이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나 엔비디아 수준이 되려면 몇 년은 걸린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GPU는 사진·동영상 데이터 처리에 특화한 반도체로 의료사진 판독, 온라인 쇼핑 등의 알고리즘 구축의 핵심으로 꼽힌다. 차량 주위 시각 정보 분석이 필수인 자율주행에도 GPU가 쓰인다.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를 입법화해 개별 기업마다 부과했던 제한을 산업 전반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AI용 반도체 부문에서 엔비디아에 도전하던 인텔이나 세레브라스시스템스 같은 업체들도 규제 대상이 된다. 엔비디아의 A100 칩을 탑재한 데이터센터 서버를 중국에 팔아온 델이나 HP도 마찬가지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미국은 또 이런 제도를 우방국들에도 도입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반도체장비 중 노광장비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네덜란드 ASML, 주요 장비에서 미국 업체들과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일본 도쿄일렉트론 등도 중국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조치는 미국의 기술 패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국에 역전당했다고 평가받아온 AI 부문의 주도권도 다시 가져오는 효과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짐 루이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이번 전략은 중국의 목을 조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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