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240원이 입금됐습니다.’
스쿠터를 타고 점심을 배달하는 도중에 스마트폰 알림이 울린다. 첫 번째 시집 <오늘의 냄새>의 지난해 인세다. ‘배달의민족(배민)’ 배달기사(라이더)로 두세 시간만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이러니 ‘문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까’ 하는 회의감이 시시때때로 고개를 든다. 그러나 그는 “배달 일 두 시간에 4만원 번 것보다 1년 동안 시집 50권 팔려서 4만원 번 게 더 기쁘다”고 고백한다.
문학평론가이자 대학 시간강사인 이병철 시인(사진)이 라이더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에세이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에 담아 출간했다. 이 시인은 지난해 여름부터 1년 넘게 배민 라이더로 일해 왔다. 음식 배달을 하겠다고 나선 건 글을 쓰는 ‘틈틈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박사 학위(한양대)를 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부업을 찾아 나섰다. 고정 급여와 4대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는 한국연구재단 연수는 2년 만에 끝났다. 이 작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이자였다. 비정기적인 원고료나 강의료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빠듯했다. 그는 “생업이 생활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배달 대행 아르바이트가 돈이 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당근마켓에서 2006년식 낡은 스쿠터를 40만원에 주저 없이 구입했다. 그는 단단히 포장된 음식들과 함께 하루 2~8시간 골목을 누빈다. 스쿠터에 몸을 싣고서 기형도 이병일 등의 시를 곱씹는다.
그는 “시 쓰는 일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진다”고 인정한다. 그런데도 시를 놓지 못하는 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 또한 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시론’ 수업에서 시에 사로잡혀 버렸다”며 “시 안에서는 안 되는 게 없고,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업계고를 졸업한 그는 전문대에서 시에 반해 일반대에 편입했고 국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까지 따게 됐다. 이 작가는 “아무리 배달 일이 좋은 수입원이라고 해도 내가 해야 하는 기본값은 문학과 강의”라며 “아직 써야 할 시가 많다”고 말했다.
배달 일은 시를 계속 쓰고, 가끔 낚시도 가고, 클래식 연주회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지만 얻는 바가 적지 않았다. ‘배송 시간, 추위 그리고 더위와의 싸움’을 이어가면서 깨달은 것들이다. 이 작가는 배달 장소를 헤매 약속된 시간에 맞추지 못하거나 음료수를 쏟으면서 주문자로부터 멸시의 눈빛을 받을 때 밥벌이 전선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는구나. 저 노을은 수많은 이들의 성실한 생이 익어가는 빛깔이겠지.”
이 작가는 스쿠터의 수명이 다하는 날 라이더 생활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글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배달 일을 줄이게 될 텐데, 그런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번에 책을 내면서 배민 라이더의 헬멧 색깔과 비슷한 하늘색 사인펜을 새로 샀다. 독자들이 책에 사인해달라고 할 때는 그 펜으로 이렇게 적어준다. “마음이 식기 전에 배달하세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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