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수도권, 지방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고점에 집을 매수한 집주인들이 예민해지면서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아무래도 고점에 집을 매수한 집주인들이 가격이 내리자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집값은 전국적으로 하락하는 모양새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을 살펴보면 이달 첫째 주(5일) 기준 전국 집값은 0.17% 떨어졌습니다. 부동산원이 해당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5월7일 이래 가장 큰 낙폭입니다. 전국 집값은 18주 연속 하락하는 중입니다.
서울 집값도 0.15% 하락해 9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내렸습니다. 2013년 8월5일(-0.15%) 이후 가장 큰 낙폭입니다. 인천과 경기에서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수도권 집값은 0.21% 내렸습니다. 2012년 9월10일(-0.22%) 이후 10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지방 집값 역시 0.13% 내려 하락 폭이 더 커졌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초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고덕아르테온' 전용 84㎡는 14억8000만원에 손바뀜했습니다. 직전 거래 16억4000만원(7월)보단 1억6000만원, 올해 최고가 19억8000만원(4월)보단 5억원 내린 거래였습니다.
이 거래가 이뤄지자 이 지역 주민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34평 14억8000만원 헐값에 팔아버린 사람 대체 누구인가"라며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했습니다. 작성자는 "이웃들 재산을 이렇게 다 깎아 먹고 고덕의 가치를 파괴하느냐. 무책임하게 남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불특정 다수에 분풀이했습니다.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마곡13단지힐스테이트마스터' 전용 59㎡도 지난달 9억8000만원에 거래됐는데 올해 최고가 13억6000만원보다 4억원가량 내린 가격입니다. 이 거래 이후 역시 지역 커뮤니티에선 "내 자산이 13억원이었는데 순식간에 10억원대로 만들어줬다. 정말 감사하다"며 매도자를 원망하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A씨는 자기 집에 들어가 실거주하기 위해 세입자 B씨가 요구한 전세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하고 퇴거를 요청했습니다. 거절을 통보한 시점은 임대차 계약이 끝나기 6개월 전으로 세입자가 집을 구할 시간도 넉넉했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 없이 A씨는 본인 집에 실거주로 들어가고 B씨는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최근 A씨 앞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이 날아옵니다. 발신인은 전 세입자 B씨였습니다. B씨는 "이 집(A씨 집)에서 4년(기존 임대차 계약 2년+전세 계약갱신청구권 2년)을 살 수 있었는데 집주인의 거절로 2년밖에 살지 못했다. 이에 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고 결국 아파트를 매수했다. 현재 (B씨가 사서 실거주하는) 아파트 시세가 하락해 매수할 때보다 4000만원이 낮아졌으니 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씨 때문에 B씨가 전셋집에서 나와 고점에 집을 살 수밖에 없었고, 시세가 내려갔으니 이에 대한 책임이 전 집주인 A씨에게 있다는 논리입니다. A씨가 B씨에게 집을 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더 황당한 것은 B씨가 집을 매입할 때 중개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도 '내용증명' 발송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B씨가 집값 하락의 책임을 중개사에게 묻자, 이 책임을 전주인 A씨에게 떠넘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A씨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당분간 집값을 두고 크고 작은 마찰은 시장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집값이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 중개 대표는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준말) 등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집주인들이 특히 집값에 예민하다"며 "'요즘 집값이 왜 이런 것이냐'며 불안을 호소하는 집주인도 가끔 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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