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근의 사이언스 월드] 갈길 먼 연구개발비 지원 시스템

입력 2022-09-14 17:21   수정 2022-09-15 00:08

추석 연휴 동안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나와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칼럼을 쓴다. 30년 연구 인생에 늘 있는 일인데, 이번에도 명절을 외국에서 혼자 보내게 됐다. 필자가 1984년 물리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부친은 세속적으로 쉬운 길을 가지 않는 아들을 말렸다. 그럼에도 물리학이 좋아서 선택했고, 아직도 그런 물리학 연구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나이 57세에 맞은 추석 명절에 외국에서 혼자 보내는 것조차 감내해가며 연구에 매진하도록 하는 것일까. “박 교수는 어떻게 그런 여건에서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지요?” 그동안 걸어온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아는 지인들은 그 원동력에 대해 가끔 물어본다. 필자는 ‘과학 정신은 끊임없는 글로벌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배웠다.

한국의 미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튼튼한 과학기술력에 달려 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학 역량을 검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혁신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남보다 더 뛰어난 기술로 글로벌 경쟁을 선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 과학기술에 달려
정부는 과학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한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30조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5%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연구원 1인당 연구비는 24만달러로 독일 다음으로 많은 세계 2위다. 그만큼 연구개발이 국가의 미래 생존에 중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우리나라 과학이 글로벌 경쟁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놓고 있지 않다고 본다. 물론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연구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1990년대로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해도, 본격적인 연구개발비가 증가한 1996년부터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연구개발비엔 낭비 요소가 많다. 지난번 칼럼에서 언급한 독일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Nature) 분석 자료에서 한국의 연구 효율성이 영국 대비 4분의 1이라고 한 것은 이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다.

연구비 지원 방식 대수술 필요
모든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고 싶어 하는 3대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에 우리나라 연구기관이 주도해 수록된 논문 수도 참고할 지표가 될 것이다. 2018년 이후 이들 세 저널에 한국은 네이처 60편, 사이언스 49편, 셀 13편 등 총 122편에 교신 저자로 참여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서울대와 KAIST가 각각 36편, 26편으로 가장 많지만, 서울대와 KAIST가 경쟁해야 할 일본 도쿄대(297편)와 중국 베이징대(227편)는 우리나라 전체 실적보다 월등히 많다.

이런 엄중하고 위급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국 과학의 경쟁력을 높일지 심각하게 고뇌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 별 고민 없이 내리는 정책은 이미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비와 우수한 학생이 몰린 기관에 또다시 엄청난 연구비를 주는 것이다. 이런 연구개발비의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선단식·대마불사식으로, 특히 일부 몇 명에게 글로벌 기준으로도 턱없이 많은 연구비와 권한을 주는 제도에 대수술이 필요하다.

필자는 코로나로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된 2021년에 부친의 임종을 못 지키고 보내드렸다. 부모의 뜻을 어기며 물리학이라는 기초과학을 하는 자식으로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날 ‘공정과 상식’이 지켜지고 새로운 도전 정신으로, 무서울 것이 없는 용기로 무장한 새로운 사람들이 한국 과학을 짊어지고 가도록 내 작은 힘을 보태기로 다짐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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