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화재기술(FT· Fire Technology)의 부족 때문이다. 현대 사회 이전의 화재(火災)는 재난(災難)이었다. 그 원인(原因)을 분석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자연현상이었다. 현대 사회의 화재는 어떨까? 온 국민이 비통해 했던 2003년 2월의 끔찍했던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를 생각해 보자. 혹자는 단순 방화범에 의한 인재로 보겠지만, 대형 참사로 이어진 원인은 화재기술의 부족에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시 푹신했던 지하철 차량 내부의 의자 쿠션이 현재는 딱딱한 소재로 바뀌었다. 국토교통부령의 ‘도시철도차량 안전기준’에 따라 불에 타지 않거나 화재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불연 및 난연 소재의 플라스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뀐 소재는 단순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소지수, 화염전파, 연기밀도, 연기독성 등 화재 안전성 평가를 통해 합격한 제품들만 채택된다. 여기엔 우리가 몰랐던 소재개발, 화재시험, 법규제정 등 여러 분야의 화재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화재기술 연구배경의 예를 살펴보기 위해 1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고 빠른 번영을 구가하던 영국 런던은 1666년 9월 ‘런던 대화재’를 겪게 된다. 화마가 5일 동안 지속되고 6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였다. 이를 계기로 당시 목재로 이루어졌던 대부분 건물이 석재로 바뀌었다. 현재의 불연재료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화재를 전담으로 진압하는 전문 소방조직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화재 기술의 역학(力學)을 다루는 화재공학(火災工學)의 탄생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 다른 예로 1871년 10월에 발생한 ‘시카고 대화재’를 살펴 보자. 이 화재 역시 9㎢에 달하는 지역이 불에 타고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엄청난 참사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시카고는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가진 상업 도시로 탈바꿈했다. 시카고가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현대 건축기술과 소방기술의 성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 이러한 초고층 빌딩에는 어떤 화재기술들이 사용되었을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로 높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롯데타워를 예로 들어 보자, 세계 대부분 나라는 초고층 건축물을 높이 200m, 50층 이상의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다. 높이 60m, 15층 이상으로 분류되는 고층건물보다 높고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는게 필수다. 고층건물보다 많은 거주자와 넓은 면적을 갖고 있는 만큼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재실자를 보다 안전하게 피난시켜야만 하다. 그러기 위해선 건축에 필요한 재료 및 설비들의 경량화와 고도의 건축 및 소방기술들이 당연히 요구된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애초에 그 크기를 작게 만들도록 건축물 내부를 마감하는 방화(불연, 준불연, 난연)재료, 건축물의 뼈대가 되어 화재가 확산되더라도 재실자의 충분한 대피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경량화된 내화구조, 화재의 확산을 막고 연기로부터 인명 피해와 소화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방화구조 등이 있다. 내화뿜칠이라 불리는 철골 구조물에 거품처럼 덧칠이 되어 있는 것이 경량 내화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다. 방화문과 제연설비 등 흔한 방화구조물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방화, 내화성능을 높이는 기술, 자연제연 방식으로 외부의 바람을 이용해 설비의 무게를 줄이는 건축기술 등은 화재기술의 좋은 예다. 점점 대형화되고 고도화되는 화재에 의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자 종합적인 화재역학을 바탕으로 한 화재공학, 화재안전 화재시험 및 화재조사 분야 등을 통칭해 우리는 화재기술(FT)이라 부른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화재기술에 다시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화재기술의 발전을 통해 시대 변화를 선도하고 경제발전의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됨으로서 국격을 높이고 국민의 삶과 복지를 증진 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본다.
< 류상훈 오산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겸임교수(미국화재 폭발조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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