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는 영국의 로열 발레단, 프랑스의 파리오페라극장 발레단과 더불어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힌다. 미국 의회가 국립발레단의 칭호를 허락한(2006년) ‘미국 발레의 자존심’이다. ABT는 1939년 설립 이후 75년 만에 처음으로 아시아인 수석무용수를 뽑았다. 발레리나 서희(36)다. 그는 2005년 수습 단원으로 입단한 지 불과 7년 만에 수석무용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ABT는 수습 단원을 포함해 92명의 무용수를 두고 있으며 수석무용수는 18명이다(2012년에는 17명).
서희의 발걸음은 하나하나가 역사가 됐다. 미국 유일의 발레 매거진 ‘포인트’의 표지 모델(2009년 10월호)이었고,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무용수(2012년)였다. ABT의 대표 무용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희를 미국 뉴욕에서 만났다. 코로나19 이후 첫 번째 여름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시즌을 마쳤습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시즌이었어요. ABT는 코로나를 굉장히 조심했습니다. 코로나와 관련한 매뉴얼이 매우 엄격했죠. 공연을 아예 취소하는 발레단도 많았기 때문에 보통 신경을 쓴 것이 아니었어요. 거기에 오랜만에 공연을 하니까 부상을 입은 무용수도 많았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나니 마치 큰 전쟁에서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어떤 공연이 잘됐기 때문에 기쁘다기보다는 몸 건강히 공연이 취소되지 않고 마무리된 것이 기쁩니다.”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는 무엇입니까.
“언제나 ‘백조의 호수’가 제일 좋아요.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꿈꾸는 클래식한 발레죠. 교과서적인 테크닉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동시에 완전히 서로 다른 두 가지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는 점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그 어려움 때문에 오랜 시간 매력을 잃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ABT에 같이 있는 안주원 수석무용수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안주원 발레리노와 저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세세한 것에 마음 쓰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저희는 ‘음악에 맞춰서 돌자’라고 얘기를 하지 ‘이 음악에서 다섯 바퀴를 돌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 순간의 컨디션에 따라서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모든 무용수가 이런 건 아닙니다. ‘음악 세 번째 박자에 손을 올리고 턴을 돌자’이런 식으로 분석적으로 무용을 하는 사람도 많죠. 안주원 발레리노와 저는 서로 믿음이 있으니까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한국어가 통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다른 무용수였다면 앞뒤 여러 설명이 필요할 텐데 안주원 발레리노와는 ‘왼쪽’ ‘오른쪽’ 같은 한 단어면 충분했어요.”
▷지금까지 가장 만족했던 무대는 뭔가요.
“돌이켜 생각하면 만족했던 무대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늘 부족하고 이렇게 해보고 싶었는데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가장 마지막 공연인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이번 시즌이 잘 끝났다는 점에서 만족스럽습니다.”
▷제일 아쉬웠던 무대는 어떤 공연인가요.
“‘오브 러브 앤 레이지’라는 공연입니다. 중간에 파트너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함께 연습을 거의 못 했어요. 말씀드렸듯이 ABT의 코로나 매뉴얼은 매우 엄격합니다. 그래서 파트너 없이 3주를 보냈습니다.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인데 파트너 없이 연습하다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루틴 같은 게 있습니까.
“옛날에는 많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신 요즘은 시간에 대한 관념이 생겼습니다. 공연하기 전에 조금 낮잠을 자고, ‘공연하기 2시간30분 전에 극장에 들어가서 준비를 한다’ 이런 식이죠. 그 외에 특별한 루틴은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괜히 징크스가 될 수도 있잖아요. 대신 리허설을 열심히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2009년 첫 주인공, 2012년 수석무용수가 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무대 위에서는 물론이고 무대 밖 삶에 대해서도요. 사실 아까 말한 계산적인 발레리나가 바로 저였습니다. ‘이 음악에서 여섯 바퀴를 돌 거야’ 이런 무용을 했어요. 완벽하게 짜인 무용이 편했거든요. 돌발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고, 리허설과 같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어떤 틀 안에서 하는 발레였습니다. 오늘과 내일의 사람이 똑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지만 이제는 알아요. 매일 다른 몸과 컨디션으로 최고의 공연을 하는 방법은 그 틀 안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말이에요. 몸 상태가 조금 좋지 않으면 공연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오늘 상태에 맞춰서 공연하는 거죠. 이제는 오늘의 공연과 내일의 공연이 달라도 괜찮다고 느껴요.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봐요.”
▷30대 중반이 되면서 은퇴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요.
“언제까지 발레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팬데믹으로 쉬는 동안 지금 그만둬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막상 공연을 시작하니까 노는 것보다 공연하는 게 좋았죠. 정신도 신체도 오래 춤출 수 있게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찍 그만두게 된다고 해도 마음의 준비는 됐습니다. 선생님들께도 말해놨습니다. 혹시 보기에 제가 은퇴해야 할 거 같으면 꼭 말해달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 제가 믿는 선생님들께 듣고 싶다고요.”
▷발레리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발레리나로서 삶을 살려면 신체적 조건, 체력, 정신력 모두 중요합니다. 타고 나고, 열심히 해야 무용수가 될 수 있어요. 무용수가 된 후에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 역할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만들어낼 건지에 대한 상상력. 그것이 발레리나를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가르침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서희재단을 통해 꿈나무를 키우고 있는데요.
“제가 누렸던 좋은 경험을 한국의 학생들과 나누고 싶어요. 제일 마음을 쓰며 하는 재단 활동은 8년째 하고 있는 ‘마스터 클래스’입니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에 가서 무료 클래스를 해주는 거죠. 지금까지 5000명 정도의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물론 한 번의 수업이 많은 것을 바꾸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수업하면서 바닥이 안 좋은 곳이 있으면 새로 깔아주고 이런 식으로 환경도 개선해줍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예전에 한 선생님이 ‘꽃은 꽃봉오리일 때도 예쁘다’고 하셨는데 이제 돌아보니 그 말이 맞습니다. 새로운 무용수를 보면 완벽하지 않은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알고 그리고 남들과 자기를 비교하지 말고 자기의 무용을 하고, 자기의 예술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활동 계획도 있습니까.
“아직 재단이 작아서 여력은 안 되지만 발레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보통 발레를 보러 가면 시놉시스를 대충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데 발레는 그보다 더 깊고 풍부합니다. 무용수가 왕자를 연기할 때 왜 왕자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왕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이런 스토리까지 생각합니다. 무용수마다 다른 왕자를 연기하는 거죠. 같은 발레를 여러 번 볼 수 있는 이유가 그겁니다. 똑같은 발레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 점을 일반인들에게도 알리고 싶습니다.”
뉴욕=강영연 기자/신연수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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