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보고, 물을 보고, 역사 속의 고인을 보고, 그들이 살았던 세상을 보라.’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이 남긴 말이다. 선비들에게 자연은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연을 통해 세상을 만났다. 자연에 파묻혀 사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휴식이자 수양의 과정이었다. 현대인은 선비와 같은 시간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아스팔트 대신 흙길을 디디며 회색 빌딩 대신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자연과 호흡하며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곳은 어디 있을까.
태백산맥 동쪽에 위치해 설악산을 옆에 두고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많은 선조들이 양양을 찾았다.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은 양양의 한 절벽 근처에서 은거하며 풍광을 즐겼다. 하조대라는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송강 정철도 가사 ‘관동별곡’에서 양양의 낙산사를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으면서 낙산사 의상대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에 감탄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양양은 한여름에도 섭씨 26도를 넘는 날이 많지 않고 한겨울에도 동해의 난류 덕에 포근한 편이다. 종합 휴양 리조트 설해원(雪海園)은 2006년 양양에 골든비치로 문을 열었다. 2017년 설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격이 다른 리조트로 첫걸음을 뗐다. 설해원은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쉼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양양국제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 동호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설해원은 3만3000㎡(1만 평)가 넘는 부지에 177개 객실만을 마련했다. 성수기에도 투숙객끼리 마주치는 경우가 드물다. 온천스파, 사우나 등 부대시설도 일행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추가로 짓는 별장단지인 설해수림과 설해별담도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콘셉트로 건축할 예정이다.
설해원은 리조트 곳곳에 사색의 공간을 마련했다. 설해온천동의 넓은 서재가 대표적이다. 사람마다 책 읽는 자세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앉은뱅이 소파, 흔들의자 등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비치돼 있다. 리조트에서도 평소 독서 자세 그대로 책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고객들이 기부한 도서를 포함해 총 4000권의 책을 골라볼 수 있다.
설해온천동 반대편 마운틴스테이 쪽으로 올라가면 활주로와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설해둘레길 입구가 나타난다. 15~20분 코스의 길지 않은 산책로지만 언덕 위에서 동쪽으로는 하조대, 서쪽으로는 속초항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경쾌한 바닷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선명한 일출을 즐기기 위해 투숙객들이 아침 일찍 이곳을 찾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여객기와 경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설해원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클럽하우스는 리조트의 상징이다. 호주산 목재 스프러스를 활용해 지은 캐노피가 웅장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동시에 준다. 이정훈 조호건축 건축사가 설계했다. 클럽하우스 내부에는 ‘구슬할망’으로 유명한 이수경 작가의 작품, 런던올림픽 벽화로 유명해진 신타 탄트라의 ‘핑크 문’,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설해원은 2024년 미술관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관 설계 및 건축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맡았다.
다른 골프 리조트와 달리 온천을 보유했다는 점도 설해원의 큰 매력이다. 온천수영장과 노천 스파에 편마암과 화강암을 넘나들며 쌓인 온천수가 하루에 1500t 공급된다. 지하수를 섞지 않은 100% 온천수다. 한 번 쓴 물은 재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낸다.
양양=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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