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깔끔한 슈트에 넥타이는 남성복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엔데믹(감염병의 토착병화)에 접어들어서도 슈트, 비즈니스 캐주얼 등 남성복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슈트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중·장년층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에 국한된다. 그 결과 남성복 시장 규모는 2010년대 초반 대비 반토막이 난 채로 좀처럼 반등 기미가 없다. 패션기업들은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 유튜버, 공간 디자이너 등 새롭게 뜬 직종 종사자들을 위해 ‘워크웨어(작업복)’, ‘젠더리스(genderless·중성적)’ 패션을 내놓으면서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톰보이맨(4곳)과 시프트 G(3곳)도 연내 백화점 ‘릴레이 출점’이 예정돼 있다. 중소기업에선 원풍물산이 ‘지모스’, 파스토조가 ‘가넷옴므’를 선보였다. 송지오인터내셔날은 지난달 남성 브랜드 ‘지오송지오’를 새로 단장해 재출시했다.
과거에는 금융권 종사자들이나 전문직들이 입는 슈트와 비즈니스 캐주얼이 주류였다. 요즘엔 일상에서나, 업무 과정에서나 모두 입을 수 있는 작업복 형태의 워크웨어 패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나온 남성복 브랜드들도 주로 20~30대들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직종 종사자를 위한 의류를 내놓고 있다. 정종보 삼성물산 시프트 G 그룹장은 “실용적인 의류를 선호하는 IT 기술자나 공간 디자이너, 유튜버 등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면서 이들을 위한 남성복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복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뚜렷한 트렌드 없이 축소돼 왔다. 2010년대 ‘빈폴’, ‘폴로’, ‘헤지스’ 캐주얼 트로이카가 남성 패션을 장악했으나, 이후 점유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격식 있는 복장의 소비가 줄면서 신원 등 남성복 기업들이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1년 6조8668억원이었던 남성복 시장은 2020년 3조8810억원으로 43.4% 축소됐다. 이후 4조원 안팎에서 정체된 모습이다.
오프라인 사업을 철수하고 온라인 전용으로 전환하는 브랜드들도 있다. LF는 지난해부터 남성복 브랜드 ‘TNGT’의 전국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브랜드 ‘코모도’도 오프라인 사업을 접고 온라인으로 전면 전환했다. 한세엠케이는 지난 7월 1세대 남성 캐주얼 브랜드 ‘TBJ’와 ‘앤듀’를 정리했다.
백화점 남성복 매장도 바뀌고 있다. 과거 남성 정장만으로 백화점 한 층을 메웠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미’, ‘꼼데가르송’ 등 컨템포러리 패션 매대를 함께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엔데믹 과정에서 남성 슈트 수요가 잠깐 늘기도 했지만, 추세로 굳어진 매출 둔화를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