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맞닥뜨린 게이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다른 캐릭터를 회복시켜주는 사람도 있었고, 병에 걸린 뒤 전염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를 택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감염자에게 엉뚱한 아이템을 치료제라며 속여 팔거나 재미로 병을 확산시키고 다니는 사례도 여럿 나왔다.
‘오염된 피 사건’이라고 이름 붙은 이 일은 단순한 게임 속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학자와 감염병학자들이 이 사태를 ‘전염병 확산의 예시’로 주목하면서다. 유력 의학저널을 비롯한 여러 학술지에는 100건 넘는 관련 논문이 실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감염병 연구에 쓸 테니 관련 통계를 달라”고 제작사에 요청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초에도 이 사건은 재조명됐다. ‘슈퍼 전파자’나 가짜 약장수 등 15년 전 게임 속에서 벌어진 추태가 현실에서도 재현됐기 때문이다.
<게임의 사회학>은 이처럼 온라인 게임 사용자들의 행태를 통해 현실을 분석하고 예측한 사례를 소개한 책이다. 엔씨소프트에서 게임 데이터 분석을 담당하는 데이터 과학자 이은조가 썼다. 저자는 “‘게임 사회학’은 앞으로 사회 변동을 예측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임 데이터 분석은 경제·경영 분야에서도 유용한 통찰을 준다.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과의 에드워드 캐스트로노바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이미 게임 속 경제활동에 대해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온라인 게임 내 사람들의 모임(길드) 규모가 크고 분업화가 잘돼 있을수록 길드는 오래 존속하지만 개별 사용자의 레벨업은 더뎌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기업을 다니면 안정적이지만 정해진 범위 내의 일만 해야 하는 반면, 스타트업은 언제든 망할 수 있지만 종합적인 업무 능력을 키우기엔 좋다는 현실을 연상시킨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