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배신의 시대>는 ‘근대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이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진화론 등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동아시아로 들어온 거대 담론을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따라 이들의 삶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썼다. 출판사 21세기북스가 만든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의 첫 번째다.
조소앙과 이광수를 예로 들어보자. 1887년생인 조소앙은 어렸을 때 정3품의 문관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1902년 성균관에 입학한 뒤 황실 특파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향했다. 이후 조소앙은 중국인 유학생과 어울리며 신해혁명의 민주주의 정신을 배웠고, 당시 일본에서 진행된 자유민권운동을 지켜보며 민(民)의 중요성을 느꼈다. ‘조선인은 열등하다’는 발언을 한 일본인 교장에 맞서 동맹휴학을 주도하기도 했다. 훗날 조소앙이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민권’이란 개념을 정립하고, 독립운동의 주체는 국민이어야 한다는 ‘대동단결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게 된 배경이다.
이광수도 비슷한 시기에 일본 유학을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1892년에 태어난 이광수는 다섯 살에 천자문을 외울 정도로 똑똑했지만, 열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 친척 집을 전전하다 서기가 됐고, 일진회 유학생에 선발되면서 1906년 다이세이중에 입학했다. 이광수는 유학을 떠나기 직전 발발한 러·일 전쟁을 지켜보면서 “러시아군은 야만적이지만, 일본군은 군기가 엄하고 조선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도 전쟁에 승리한 일본을 동경하면서 그의 머릿속엔 ‘근대화는 곧 힘’이란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광수는 “힘없는 조선이 살아남으려면 일본에 귀속돼야 한다”는 ‘내선일체’를 옹호해 변절자 소리를 들었다.
루쉰과 왕징웨이, 후세 다쓰지와 도조 히데키의 삶을 가른 것도 결국 근대화에 대한 해석이었다. 21세기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저자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사고방식이 횡행하는 지금,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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