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해외서 위상 높아진 K바이오, 국내서 홀대받는 이유

입력 2022-09-19 17:37   수정 2022-09-20 00:11

“대규모 글로벌 학회나 투자 행사에서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이 내놓는 임상 데이터를 볼 때마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9일부터 닷새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만난 한 프랑스 전문의의 말이다. 셀트리온의 세 번째 항암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베그젤마’ 임상 결과를 확인하려고 부스를 찾은 그는 회사 관계자들에게 오랫동안 질문을 쏟아내고서야 발길을 옮겼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전문의는 30분 넘게 셀트리온의 발표 현장을 떠나지 않고 항암제 출시 시점 등을 꼼꼼하게 물었다.

부스를 지키던 셀트리온 직원들의 명함이 바닥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았다. ‘K바이오’의 높아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셀트리온뿐만이 아니다. 임상 결과를 공개한 네오이뮨텍, 에이치엘비 등도 주목받았다.

해외 학계는 물론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바이오 기업을 바라보는 눈길도 달라졌다. ESMO 학회장에서 만난 한 국내 바이오 기업 대표는 “4~5년 전엔 냉대하던 글로벌 제약사들이 먼저 미팅을 요청하는 게 일상적인 일이 됐다”며 “임상 데이터를 보여달라는 수준이 아니라 기술이전 딜(거래)을 해보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받는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가 알아주는 바이오 제조 강국이다. 의사와 과학자들의 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런 환경이 토대가 돼 ‘K바이오’는 빠르게 성장 중이다. 연간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2019년 7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13조37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ESMO에서 만난 국내 바이오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바이오 기업들이 자유롭게 뛰기 어렵게 만드는 국내 산업 환경 때문이다. 정부가 핵심 인재 양성,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의료 데이터 활용, 원격의료 등은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물론 기업들도 주가나 투자자를 의식해 무리하게 임상 결과를 부풀려 시장 신뢰를 잃는 일을 해선 안 된다. 국회는 바이오, 의료를 놓고 정쟁을 벌여서도 안 될 일이다.

“바이오 창업이 활성화되려면 투자금이 회수될 수 있게 하는 선순환 구조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고민은 부족해보여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데이터도 사실상 잠자고 있고요. K팝(방탄소년단), K드라마(오징어게임)처럼 K바이오가 글로벌 바이오업계의 주인공이 되려면 바이오 생태계가 탄탄해질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절실합니다.” 신약 벤처 A사 대표의 말이 우리 정부가 가야 할 방향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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