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고위 인사들이 19일 식품업체의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관세 인하 등으로 가격 인하 요인이 생겼는데, 식품업계가 오히려 제품 가격을 올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 인상 요인이 커진 상황에서 최대한 버티다 뒤늦게 올렸는데, 정부가 이를 문제 삼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추 부총리는 이날 민생물가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을 정조준했다. ‘가격인상 동향 일일 모니터링’, ‘식품업계와 가격안정을 위한 협의’, ‘공정거래위원회 점검’ 등 구체적 카드까지 거론했다.
이는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앞서 10월에 물가 정점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최근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과 라면 같은 가공식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가격 인상 역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
식품업계가 최근 물가 상승 심리에 편승해 제품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추석 연휴 이후 CJ제일제당, 농심 등 주요 식품업체는 김치, 라면, 스낵류 등의 가격을 잇따라 올렸다. 농심이 지난 15일부터 신라면 한 봉지 가격을 736원에서 820원(대형마트 기준)으로 11.4% 인상한 게 대표적이다. 대상과 CJ제일제당은 김치류 가격을 평균 10% 이상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정부 일각에선 관세 인하 등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기업들이 이를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관세 인하와 원료 매입비 지원 등의 정책으로 가공식품 제조에 드는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줄었을 텐데 기업들은 오히려 가격을 올리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담합 등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가 물가에 지나치게 개입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란 비판도 나온다. 당시 정부는 물가가 치솟자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 특별관리해 논란이 됐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국제 곡물 가격이 안정되고 있지만, 글로벌 원재료 가격은 통상 6개월~1년의 시차를 두고 원가에 영향을 준다”며 “그동안 기업들이 가격 상승 압박을 버티다가 더 견디지 못해 가격을 일부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직후 가격 담합을 시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동원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이전 정부의 구태를 반복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고 했다.
도병욱/한경제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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