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영국 군주로 재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면에 들었다. 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서거한 여왕의 장례식이 19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이후 57년 만의 영국 국장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세계 각국 정상과 영국 전·현직 총리, 시민 등 100만 명가량이 운집해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란색과 붉은색의 사자가 그려진 영국 왕실기 ‘로열스탠더드’가 덮인 관 위에는 여왕이 대관식 때 사용한 왕관과 지휘봉, 꽃이 올려졌다. 웨스트민스터 성당은 여왕의 생애를 기념해 1분에 한 번씩 총 96번의 종을 울렸다.
오전 11시께 성당으로 들어온 운구 행렬을 왕실 일가가 침통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찰스 3세 국왕 부부를 이어 윌리엄 왕세자, 여왕의 증손주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가 함께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성경을 봉독했다. 장례식은 낮 12시께 끝났다.
여왕의 관은 버킹엄궁 인근 웰링턴아치를 거쳐 유년 시절을 보낸 윈저성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여왕의 관이 지나는 길에 꽃을 던지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윈저성 내 세인트조지 성당에서 소규모 미사를 마친 뒤 여왕의 관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난해 작고한 남편 필립 공 곁에 안치됐다.
장례식에는 세계 주요국 정상과 왕족 등 약 500명과 영국 전·현직 총리 등을 포함해 2000여 명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나루히토 일왕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은 장례식에 앞서 18일 여왕의 관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일왕이 장례식에 간 것은 1993년 아키히토 일왕이 보두앵 1세 벨기에 국왕 국장에 참석한 이후 사상 두 번째다.
그가 재위한 70년간 영국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유럽연합(EU) 출범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겪었다. 여왕은 호주와 뉴질랜드 등을 방문하며 영연방을 지키고, 영국민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여왕은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며 “여왕은 품위 있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조문록에는 “그는 모든 이들을 존엄과 존경으로 대했고, 그를 만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썼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여왕의 사려 깊은 관점은 항상 특별했다”며 “그가 몹시 그리울 것”이라고 추모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의 부인인 커밀라 영국 왕비는 BBC 등을 통해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왕은 유일한 여성 지도자로서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정립했다”고 했다.
이날 새벽부터 장례식을 보러 영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가디언은 “웨스트민스터 성당으로 가는 길은 가슴 가득 배지를 단 참전용사와 검은 옷을 입은 시민, 셀카봉을 든 관광객으로 붐볐다”고 보도했다. 찰스 3세 국왕은 18일 버킹엄궁 홈페이지를 통해 영국 국민과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여왕에게 보내준 애도와 지지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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