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또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기업 인사 운영상 큰 어려움을 주고 법적 책임 문제까지 야기하는 직원이 있다. 부하직원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상습적으로 하는 임원, 허위 사실에 근거해 진정·고소 등 분쟁을 야기하는 직원, 자신의 업무상 과오를 감추고 인사상 이익을 얻기 위해 동료 비위행위를 과장하여 신고하는 직원 등이 그러한 예다. 이런 직원은 문제적 언행을 약간의 변주를 곁들여 오랜 시간 반복하는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기업이 대응에 나설 즈음에는 직원들 사이에 부정적 평판이 널리 퍼진 경우가 많다.
이처럼 '선을 넘는' 직원 때문에 고민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이들의 본질을 잘 포착한 용어를 찾기 어렵다. 국내외 출판물에서 문제직원, 몬스터직원, 싸이코패스 직원, asshole ('또라이'로 번역되었다), toxic employee, jerk 등이 유사한 맥락에서 쓰이긴 하는데, 이들 용어는 자기과시, 불통, 뒷담화, 상습적 업무 미루기 등 비호감 성격과 행태를 보이는 직원을 가리킴이 보통이다. 즉, 앞의 예처럼 문제적 언행으로 결과적으로 책임 문제를 야기하는 비호감 직원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면까지 포괄하지는 못한다. 여기서는 아쉬운대로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를 빌어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으로 칭한다.
혹시 모를 오해 방지를 위해 적어둔다. 문제 행동을 하는 직원은 특별 취급할 필요가 없는 보통의 직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문제 행동에 관여했지만 자기성찰을 통해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대응 조치 효력을 다투더라도 동료를 힘들게 하는 극한 대응이나 언행은 삼가는 그런 직원 말이다. 윤리의식 결여가 아니라 세대 차이나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공감능력 부족이 문제 행동의 원인일 수도 있다. 필자는 이들은 '오피스 빌런'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극단적 언행을 하는 직원은 눈에 잘 띄기 마련인데, 이로부터 초래되는 편향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는 말처럼, 기업 인사에서도 잘못된 행동을 대상으로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어떤 직원이라도 마녀사냥 하듯이 몰아세우고 과중한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
단, 어떤 비위 행위나 언행은 예외성, 동기, 반사회성, 자기성찰 흠결의 면에서 해당 직원의 삐뚤어진 인격과 습벽을 빼고는 설명이 어려운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이런 언행을 하는 직원이 '오피스 빌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직원이다. 그리고 그런 직원이 드물기는 하지만, 수가 적다고 가볍게 보면 안된다. 단 한 명이 저지른 언행의 부정적 효과가 막대하여 기업이 전력을 기울여 뒷수습에 나서게 되고, 그럼에도 상처를 남기는 사례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희박한 윤리의식과 메타인지 부족으로 예상 못한 방향으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경우가 많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른 비위행위 직원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의 매운 맛(?)을 보고 고생하는 기업 담당자들과 같이 대응방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 깨달은 바다.
고위 임원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하고 징계와 분쟁 대응까지 담당한 적이 있다. 그 임원과 일했던 10여명의 직원이 한 목소리로 인격 비하, 머리 때리기, 육아휴직 신청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비난 등을 지적했고 그 악행은 장기간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변명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임원은 조사와 징계절차에서 모든 사실을 부인하거나 친근감의 표시를 직원들이 오해했다고 주장하고, 허위 신고를 이유로 신고 직원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시사했다. 자기 방어를 열심히 한다고 이해하기에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고, 해당 임원을 대할 때마다 벽에 이야기하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그 임원은 신고 직원과 담당자들을 한참 두렵고 힘들게 하다가 종국에는 기업을 떠났는데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것 같지는 않다. 떠난 후 자기가 한 위법활동을 기업 탓으로 돌리면서 기업을 고소하고 비방했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오피스 빌런' 프로파일에 잘 들어맞는 사례다.
기업은 이런 '오피스 빌런'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비위행위가 문제되고 있는지, 법적으로 허용되는 대응 조치 범위가 어떠한지, 기업이 처한 상황과 대응 역량이 어떠한지 등에 따라 세세한 대응방식은 달라진다. 그러나 기본 원칙은 같다. '오피스 빌런'을 상대로 한 첫번째 대응은 반드시 관철한다는 태도와 그에 따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첫번째 대응은 경고, 전근, 직무 변경, 사직 권유, 징계, 고소 등 다양할 수 있고 여러 조치를 결합할 수도 있다. 앞서 기본 원칙은 어떤 첫 번째 대응을 하더라도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에 근거한, 누가 보아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대응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첫번째 대응 관철 여부가 향후 전개 양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오피스 빌런'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상 첫 번째 대응 후 그 무효를 주장하는 법적 조치를 실행할 가능성이 매우 큰데, 만약 그 분쟁에서 첫 번째 대응이 무효로 인정되면 더욱 강화된 확신으로 분쟁을 장기 지속할 우려가 크다. 반대로 첫 번째 대응의 정당성이 다투어지지 않거나 법원 등에서 인정되면, 당장 상황 해결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기업은 사내 지지를 받으면서 후속 대응을 훨씬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분쟁 종결을 앞당길 수 있다.
이러한 기본 원칙에서 △신속함보다는 충실한 사실관계 확인을 앞세워야 하며 △조사와 조치 과정에서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고 방어 기회를 부여하며 △의심스러운 경우 대응 조치 수위를 안전하게 한 단계 낮춘다는 세부 원칙이 나온다. 한마디로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반대 결정, 즉, 신속한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사실관계 확인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합리적 방어 기회 부여를 하지 않고 해고, 고소와 같은 강경 조치를 선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는 권투로 비유하면 카운터 펀치를 노리는 상대방 앞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펀치를 크게 휘두르며 턱을 노출하는 격이다. 그런 펀치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끊어치는 스트레이트 한 방에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필자가 기업 노동변호사로 '오피스 빌런'의 사후적 대응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알게 된 유념사항을 논했지만, 이 문제는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문제 행동 배후의 심리가 무엇인지 △문제 행동은 어떤 계기로 발현되고 전개되는지 △대응 과정에서 동료나 인사 담당자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문제 행동을 예방, 억제하는 인사조치, 교육, 캠페인 효과를 높일 방안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그런 직원 채용을 피할 방법이 무엇인지와 같은 주제를 심리, 인사, 법률 전문가들이 같이 살펴보는 것이다. '오피스 빌런' 문제는 이처럼 통섭적 접근을 해야 제대로 풀 수 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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