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인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등 처벌을 가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중기인들은 여전히 정책이 탁상공론에 머물러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중기인을 좌절케 하는 불명확한 법 규정, 현실과 동떨어진 강제 조항은 단 한 자도 고쳐지지 않았다. 중기중앙회 최근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35.1%가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게 법과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악법도 법’이라고, 중기인들이 부과된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다. 수도권 중소제조업체 A대표는 중대재해법에 대비하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았다. 하지만 공장 내 바닥의 안전성이나 배치된 사다리와 관련해서 근로감독관마다 ‘바닥을 교체해야 한다’ ‘충분하다’ ‘사다리가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 등 다른 해석을 내려 혼란만 겪었다. A대표는 “법이 모호해 정부 담당자들도 자신 없어 한다”며 “정부가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려고 만든 법 같다”고 한탄했다.
대다수 중소기업에 중대재해법은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중소기업은 단 한 번의 중대재해 사고만으로도 문을 닫게 된다. 99% 중소기업에서 오너가 곧 대표인 상황에서 사업주 징역형은 회사의 존폐와 직결된다.
중소기업인들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대재해법, 주52시간 근로제 등과 같은 노동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의 비타협적인 태도 탓도 있지만 정부조차 문제점을 고치는 데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행령 개정이나 법 해석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눈치만 보다’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한 산업안전 전문 변호사는 “안전보건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는 문제도 정부의 법해석만으로 해결이 가능한데 고용부는 의지가 약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 유해·위험요인 확인, 관련 인력·예산 편성 등 9가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확보 의무도 현실에 맞게 발빠르게 고칠 수 있는 데도 미적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시행이후에도 사고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도 법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의 복합 경제위기로 중소기업인들은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버거운데 정부는 너무 느긋하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나고 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반대 입장을 전달하며 주52시간제 문제를 다시 꺼낸 것도 중기인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제까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바란다는 절박한 호소에 메아리가 돌아오길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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