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일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못 박았다. 대신 기존 원전의 경우 2031년부터, 신규 원전은 가동 시점부터 안전성이 높은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사용해야 하고,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방폐장 부지 선정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준위 방폐장 건설이 최대 숙제로 떠올랐다.
환경부는 이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초안을 공개했다.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게 핵심이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는 것은 확정됐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하면서 원전을 포함하지 않았는데, 정권 교체와 함께 9개월 만에 입장을 바꿨다. 유럽연합(EU)이 지난 7월 EU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환경부는 이번 초안에서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을 녹색부문(탄소중립과 직결된 활동)에, 원전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을 전환부문(탄소중립으로 가는 과도기 활동)에 포함했다. 원자력 핵심기술에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차세대 원전, 핵융합 등 미래 원자력 기술 확보와 ATF 사용, 방사성폐기물관리 등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이 포함됐다.
대신 원전 신규 건설과 계속 운전은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2045년까지 관련 허가를 받도록 했다. 원전 신규 건설 땐 ATF를 사용해야 하고 기존 원전 계속 운전 땐 2031년부터 ATF를 적용하도록 했다. EU가 계속 운전 원전은 2025년부터 ATF를 적용하도록 한 것에 비해 6년 더 여유를 준 것이다. 조 과장은 “주요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국내에서는 2031년이 상용화가 가능한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고 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도 마련하도록 했다. 하지만 고준위 방폐장을 언제까지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시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EU가 2050년까지 방폐장에 대한 국가 계획과 소요 비용, 자금조달 방안을 마련하도록 명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환경부는 정부가 작년 12월 확정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이 이미 있는 만큼 별도 시점을 녹색분류체계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기본계획엔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하고, 20년 안에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이내에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한다’는 방침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부지 선정이 언제 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방폐장 부지 선정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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