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외부기관에 위탁해 운영 중인 근로자건강센터가 파견근로자들로 구성돼있다는 법원 판결이 2심에서 뒤집혔다. 재판부는 원심과 달리 산업안전보건공단이 근로자건강센터 근로자들을 상대로 지휘·명령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최근 하청 근로자의 원청 직고용이 법정에서 잇달아 인정되는 상황에서 이와 반대되는 판결이 나오면서 불법파견 여부를 둔 노사 분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는 최근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A씨가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에 불복해 산업안전보건공단 측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산업안전보건공단 손을 들어줬다. A씨를 파견근로자가 아닌 하도급 근로자로 본 것이다.
근로자건강센터는 50명 미만이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의 직업성 질환 예방과 상담 등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현재 전국 23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의 경우엔 2012년 4월 출범 후 2019년까지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위탁운영해오다가 2020년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으로 위탁운영 기관이 변경됐다. 2013년부터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서 근무해온 A씨는 새 위탁운영 기관이 기존 고용을 승계하지 않으면서 그 해 퇴직하게 됐다.
일자리를 잃은 A씨는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직원들은 조선대 산학협력단이 아니라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업무 수행에 관한 지휘·명령을 받기 때문에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산업안전보건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2년 이상 파견근로자로 일한 직원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위탁운영계약의 실질은 도급계약”이라고 맞섰지만 1심 재판부는 A씨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을 맡았던 광주지방법원 민사13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반기마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운영실태를 평가하는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매년 조선대 산학협력단 종합평가를 실시해왔다”며 “종합평가 결과에 따라 전국 근로자건강센터의 등급 분류가 이뤄지는 것을 고려하면 광주근로자건강센터 운영의 상당부분이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성과관리 지표에 맞춰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공단은 2018년 통합전산시스템 도입으로 모든 근로자건강센터의 주간·월간 실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상시적으로 센터 운영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해왔다”고도 했다.
2심에선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2심 재판부는 “각 센터가 근로자 인사관리를 자체적으로 수행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공단과 광주근로자건강센터는 위탁계약에 근거한 도급 관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단의 운영실태평가엔 개별적인 업무수행 방식과 관련한 점검항목이 없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A씨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업무를 지시하거나 구체적인 업무과정과 방법을 감독했다고 볼 수 없다“며 “공단이 전국 각 근로자건강센터에 제공한 업무수행 가이드도 센터 운영 및 업무 처리방식 등에 관한 참고자료에 불과하고 각 센터는 지역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됐다”고 봤다. 통합전산시스템에 대해서도 “센터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 지휘·명령 수단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기업들이 하청 근로자의 불법파견 여부를 두고 벌어진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는 가운데 나온 원청 승소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포스코 광양제철소 협력사 직원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원청에 직접 고용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해 7월 현대위아와 하청 근로자들간 소송에서도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이외에도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제철 한국GM 등이 불법파견 관련 2심에서 패소해 현재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과거 여러 대기업의 불법파견 관련 소송에서 근로자 승소 판결을 내렸던 광주고법 민사2부가 원청 손을 들어줬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비슷한 수많은 민간 위탁계약의 적법성이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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