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첫날 물렸다" 개미들 피눈물…'적자' 기업의 배신 [신현아의 IPO 그후]

입력 2022-09-25 07:07   수정 2022-09-25 17:16


국내 1위 수제맥주 기업 제주맥주가 주가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상장 때까지만 해도 '사상 첫 수제맥주 상장사'란 기대감을 업고 증시에 입성했는데요. 당시 '만년 적자' 기업이었음에도 성장성을 인정받아 상장한 이 기업의 주가는 현재 공모가의 절반 수준으로 주저앉은 상태입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3일 제주맥주는 194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날 종가는 공모가(3200원) 대비 약 40% 낮은 수준인데요. 시초가(4780원)와 비교하면 약 60% 빠졌습니다. 제주맥주는 지난해 5월 26일 상장했는데, 상장한 지 1년 4개여월 만에 주가가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든 겁니다. 이 기간 코스닥 지수는 24.19% 하락했는데요 이보다 낙폭이 더 큰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미들의 원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포탈 등 종목토론방에선 "상장을 왜 한 건지 모르겠다" "앱 삭제하고 우연히 2000원 아래인 걸 확인했다. 정말 울고 싶다" "6000원에 첫날 물렸다"는 등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주맥주는 상장 초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상장 첫날 고가는 6040원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약 2개월간 4000원대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이달 7일 상장 후 처음으로 종가 기준 주가가 2000원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22일엔 장중 1900원으로 떨어져 52주 신저가도 기록했죠.
'1호 수제맥주 상장사' 기대감 컸는데…
제주맥주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이익미실현 기업특례)으로 상장한 기업입니다. 2015년 설립 이래 매년 적자를 이어가면서 일반 상장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테슬라 요건은 적자를 내는 등 일반적인 상장 요건을 갖추지 못하더라도 성장성이 있는 기업에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인데요. 제주맥주는 그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죠.

우선 흑자전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주류 위탁제조가 가능해지면서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면 손익분기점을 넘어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죠.

주세법 개정으로 인한 종량세 통과로 수제맥주 시장이 더 커지는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 시장은 2017년 433억원에서 지난해 1520억원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내년에는 370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각종 드라마와 예능 간접광고(PPL)를 통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끌어올린 점도 평가가치 산정에 긍정적으로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이에 제주맥주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성공해 공모 희망밴드(2600~2900원)를 초과한 3200원에 공모가를 확정하게 됩니다. 일반 청약에선 테슬라 요건 상장 기업 중 역대 최고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죠.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제주맥주는 '사상 첫 수제맥주 상장사'로 이색업종의 등장에 시장이 관심이 쏠렸다"며 "당시 코로나19 여파가 지속되면서 '혼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 '곰표맥주' 대란 등의 영향으로 수제맥주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점 등이 흥행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도 적자 못 벗어나
하지만 상장 이후 적자 상황은 계속됐습니다. 지난해 제주맥주는 72억4889만원의 영업적자를 냈습니다. 앞서 상장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영업이익 13억원으로 흑자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오히려 직전년도(2020년·43억9570만원)보다 적자폭이 더 커졌습니다.

작년 1윌부터 주류 위탁제조가 허용되면서 업체들간 경쟁이 심화한 데다 원가가 크게 오른 게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2년 새 약 100종의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다"며 "신제품을 출시해도 그 효과가 위탁제조 시행 이전보다 줄어들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제주맥주는 올 상반기엔 영업적자 39억9609만원을 기록했는데요. 지난해 상반기(33억3768만원)보다 적자폭이 늘어난 상황입니다. 2025년까지 영업이익 383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셈이죠.

증시 침체 상황도 주가의 큰 타격을 주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특례상장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들은 증시가 하락 조정을 받을 때 약세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금리 인상 등의 여파에 우리 증시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 영향을 유독 더 받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상장 후 유통 가능한 물량 비중이 당초 많았기에 기관 투자자의 매물 출회가 이어진 점도 주가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원가상승·환율 악재…자체 브랜드로 장기적 내실 다질 것"
제주맥주 관계자는 "주가 상승을 위한 재무적인 노력은 단기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주 환원을 가능케 하기 위해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키우거나 자체 브랜드 확대 등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법안 개정으로 주류 위탁제조가 가능해진 뒤 타 업체의 신제품들이 시장에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경쟁사와의 파이 분산이 불가피했고, 이는 실적 타격으로 이어졌다"면서 "원재료·물류비 상승에 경기 침체, 환율 악재까지 겹치면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수제맥주 업계는 현재 사라지는 업체들이 생기는 등의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제주맥주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타 업체와의 콜라보(협업)한 제품이 아닌 자체 브랜드로 매출의 70~80%를 내고 있다"며 "조정기가 지나고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수익성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올 하반기는 판관비를 줄이는 등의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음식료주는 2차전지주나 태양광주와 같이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업종이 아닌 만큼 실적이 주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며 "결국 실적을 회복해야 주가 반등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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