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8차 대러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 동원령과 핵위협에 내놓은 대응이다.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와 첨단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전쟁이 길어지며 서방 중심의 국제사회는 대러 경제제재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과 튀르키예 등 그간 러시아에 우호적이던 국가들도 냉랭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8차 제재는 앞서 G7의 러시아산 석유 가격상한제 시행 합의를 반영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이달 초 G7 재무장관들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통제해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러시아가 원유를 통해 얻는 수익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EU가 연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90%를 줄이겠다고 공언한 만큼 파급 효과가 어떨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만 가격상한제를 실제 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제재 결정은 만장일치가 있어야 한다”며 “EU 회원국마다 에너지 수급 등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제재가 확정되려면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U의 이전 대러 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난 위험에 처했다. 러시아는 G7 합의 당시에도 “가격상한제를 적용하는 국가에는 석유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서방이 새로운 긴급 제재를 발표한 건 러시아가 전날 전쟁 장기화를 암시하는 군 부분 동원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동원령 발동 하루 만에 1만명 이상이 입대를 자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BBC 등 외신들은 러시아인들이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핀란드,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로 대거 도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 국가들은 결과가 조작될 것이 뻔한 가짜 투표라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 절차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의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총회에서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로 구성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서 러시아를 퇴출하자는 ‘안보리 개편론’도 나왔다.
전쟁에 중립 입장으로 친러 행보를 보여온 국가들의 태도도 사뭇 달라졌다. 23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1일 유엔총회 중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의 회담에서 “중국은 수수방관하거나 불에 기름을 붓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급선무는 휴전”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상황 장기화와 부정적 파급효과가 심해지는 것은 중국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일”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와의 동맹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이번 중국 외교부의 성명은 푸틴을 거의 지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서방의 중재자였던 튀르키예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불법적인 일(병합투표)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며 “오히려 외교 절차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어렵게 만들고 불안정을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정유회사들은 이달 들어 러시아산 원유와 석탄에 대한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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