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23일 16: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 A는 배우자인 B의 부정행위를 알게 돼 극심하게 다툰 끝에 합의서를 썼다. 합의서의 내용은 "A와 B는 이혼하고 재산분할로 B가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A에게 이전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후 A는 B에게 합의서대로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B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협의이혼 절차에도 응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A는 법원에 B를 상대로 아파트의 소유권 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경우 아파트를 이전해 달라는 A의 청구는 인용될 것인가?
우선 아무리 유사한 사례라 할지라도 재판에서 반드시 하나의 답만 도출되는 것은 아니고 사안에 따라, 시점에 따라, 변론 수행 방식 등에 따라 여러 변수가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위 사례와 유사한 사안에 대한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원은 A의 청구를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법원은 B가 A에게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재산분할의 합의는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태인 A와 B가 장래에 협의이혼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말은 당사자가 약정한대로 협의이혼이 이루어진 경우에 한해 그 합의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협의이혼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인관계가 존속하거나 협의이혼이 아닌 이혼소송에 의해 재판상 이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위 합의는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결론은 A가 가정법원에 B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위 합의서대로 재산분할을 해 달라고 청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즉, 협의이혼이 아니라 이혼소송에 의해 이혼을 하는 경우 위 합의서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되고, 다만 합의서의 내용이나 합의에 이르게 된 제반 사정은 가정법원이 적정한 재산분할을 정하는데 참작 사유로는 고려될 수 있다.
#2. A가 배우자 B의 부정행위 사실을 알고 두 사람이 합의서를 썼으며, 합의서의 내용은 A와 B가 이혼하고 재산분할로 B가 자신의 명의 아파트를 A에게 소유권을 이전해 주기로 하는 것이다. 1번 사례와 다른 점은 이후 실제로 B는 합의한 대로 A에게 아파트의 소유권을 이전해줬고 A와 B는 협의이혼을 했다. 그런데 B는 협의이혼을 한지 1년이 지나 가정법원에 A를 상대로 이혼을 원인으로 한 재산분할 청구 심판을 제기했다. A는 위 합의서에 따라 재산분할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 재산분할을 다시 하자는 B의 청구는 인용될 것인가?
마찬가지로 사안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현재 대법원 판례의 입장에 따르면 법원은 B의 소송을 각하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위 합의서는 협의이혼을 조건으로 하는 것인데 실제로 A와 B가 협의이혼을 함으로써 조건이 성취되었으므로 A와 B의 재산분할 합의는 유효하다. 당사자 사이에 이미 재산분할에 관한 합의가 성립하였다면 법원에 재산분할 청구를 할 이익이 없다고 보아 이러한 소는 부적법 각하되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사건을 매우 단순화한 것이어서 실제 사건들은 저마다 특수한 사정이 더해진다. 부부 사이에 합의서를 썼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합의서의 내용이나 이를 작성하게 된 상황, 당사자의 관계, 이혼을 전제로 하였는지 여부, 이혼의 시점, 재산분할 청구의 시점 등을 비롯해 위 판례를 변주할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사실 완전히 동일한 사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안전하다.
따라서 유사해 보이는 사안이라고 해서 재판의 결과를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판례들을 이것저것 들면서 사실관계를 판례 사안에 억지로 끼워 맞춰 재판 결과를 예단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사건마다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 당사자의 관계, 사건의 발생 시점, 사실관계의 경중 등이 다르고 이에 대한 균형감 있는 해석이 필요한데, 판례와 유사한 측면에만 집착하게 되면 실은 판단에 더 중요한 요소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아울러 사회와 시대가 변함에 따라 판례도 변경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지만 현재의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위 사례에 비춰본다면 사회적, 경제적, 지적인 측면에서 대등한 성인들이 합리적인 검토와 근거를 바탕으로 혼인관계 정리에 따른 적정한 재산 정리 방법을 약속했다면, 그 약속은 최대한 존중되고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악의적인 허언이 근절되고 약속은 지켜지리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행동한 사람이 불의의 손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정의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필자의 개인 견해일뿐 법무법인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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