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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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 스타트업 생태계에 들어왔던 2013년과 비교하면 스타트업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생태계에 들어왔을 때 ‘창업’을 했다고 하면 다들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 라고 바라보곤 했다. 게다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그게 뭐냐고 묻기 일쑤였다. 누구나 한 번 쯤은 벤처버블을 들어보았다며 혀를 끌끌 차곤 했던 기억이 난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과 파격적인 복지제도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스타트업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최정상급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할 만큼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대중적인 단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십억은 물론이고 수백억, 수천억, 심지어는 조단위의 지분가치를 보유하게된 창업자들이 수두룩 하고, 이런 성공 신화를 꿈꾸며 정말 많은 창업자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 중 ‘창업 고려 또는 경험 여부’ 항목에 따르면, 34.9%의 응답자가 ‘창업을 생각해봤다’고 답했을 만큼 한국 사회에 ‘스타트업’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들이 하는 장난이 아니게 된 셈이다.이제는 오히려 스타트업에 엄청난 투자금이 몰리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스타트업들이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좋은 업무환경과 복지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보니 오히려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나 복지를 비롯한 근무 조건에서 스타트업이 열세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한 언론사와 포켓서베이가 일반인 1,5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전체의 17%가 스타트업의 이미지를 ‘수평적/자율적 조직문화와 복지 혜택’으로 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들의 복지제도와 업무 환경을 보면 실로 대단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인재들이 모여서 집약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내야하는 스타트업들에게 가장 귀한 것이 좋은 인재이다 보니 그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것이 최근 2-3년간 스타트업 생태계의 큰 화두였다.
예컨대 한국 스타트업을 대표하는 토스의 경우 누구나 일하고 싶은 업무 환경과 파격적인 복지 제도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6개월간 장기근속을 하는 직원의 경우엔 1억 원 상당의 무이자 주택 대출을 제공하고, 개인 법인카드를 지급해 금액 제한이 없는 식대와 승인 없는 무제한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내에는 헤어디자이너와 바리스타도 따로 배치해 둘 정도로 복지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지난 4월에는 토스의 이승건 대표님이 만우절 이벤트로 직원들에게 테슬라 10대를 선물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오늘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버킷플레이스는 허먼밀러 의자를 전 직원의 집으로 선물한 것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이 전 직원에게 제공하며 유명해진 이 의자는 가격만 200만원 안팎에 이르며 최근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까지도 기업들의 복지 수준을 가르는 척도로 떠올랐다.
"저러다 다 망할 줄 알았어"
스타트업들의 좋은 복지제도와 업무 환경은 좋은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남의 돈으로 저렇게 보여주기식 퍼주기를 하는게 맞아?’ 라든지, ‘기사에서는 저렇게 좋은 복지와 업무 환경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많은데 왜 정작 우리 회사는 이렇지?’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2-3년간 스타트업 생태계에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몰리고, 전 세계적으로 불마켓 (장기간에 걸친 주가상승이나 강세장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황소에 비유한 것)을 형성하면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복지제도와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더 파격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해왔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금리와 원달러 환율의 인상, 전 세계적인 불황, IPO에 올라선 회사들의 기업가치 하락 등 스타트업 생태계에 다시금 베어마켓 (주가를 비롯한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거나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약세장을 뜻하는 말로, 하락장을 곰에 비유한 말)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고 세간의 주목을 받던 회사들이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려주고 있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거봐 저러다 다 망할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투자 생태계가 얼어 붙고 자금 경색이 생기면, 회사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인건비와 복지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감원을 이야기하고 있고, 재택근무와 공격적인 유연근무를 외치던 회사들이 ‘전시상황’이라고 표현하며 다시 사무실로 모이라고 외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복지제도와 업무 환경이 변한다면 그 회사의 ‘조직문화’가 바뀐 것인가? 이렇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갑자기 바뀌고 얼어 붙는 것이 그 조직의 ‘조직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복지=조직문화'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복지 = 조직문화라고 생각하지않는다. 복지는 의사결정 방식, 보상제도, 커뮤니케이션 형태 등과 함께 그 기업의 조직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자 조직 전체가 약속한 규칙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더라도, 오히려 더 힘든 상황이라면 더 단단하게 그 규칙이 지켜지고 모두가 같은 규칙 하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텐데 어려울 때 갑자기 규칙을 바꾼다는 것은 애초에 그 규칙을 잘못 만든 것이 아닌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예컨대, 우리 회사에 전사 재택근무라는 ‘자율적인 업무 환경’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재택근무가 조직 전체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혹은 우리 조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개개인의 자율성과 일과 삶의 균형이고, 이렇게 보장한 개인의 자율성이 높은 생산성과 좋은 성과의 근간이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전사 재택근무라는 업무 환경이 빛을 발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개인의 자율성 보다는 굉장히 많은 협업과 소통이 필요하고 정해진 업무 규칙과 업무의 완결성이 중요한 조직이라면 어쩌면 재택근무라는 환경은 생산상을 저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복지 제도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점심식대를 무제한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자. 직원들의 입장에서 회사가 점심식대를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면 이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회사 입장에서도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비용이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복지 제도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전제 되어야 한다. 가장 첫 번째는 창업자와 대표를 비롯해서 주요 경영진들이 이런 제도를 ‘진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다. 사실 필자를 비롯해서 아직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이미 규모를 이루고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창업자와 대표도 그 상황과 자리가 처음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니 그들도 아직 대단한 기업가정신을 가진 창업자가 아닐 확률이 높고, 극단적으로 좋거나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두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이 점심식대로 수십만원을 먹어도 정말 괜찮은지, 그게 정말 스스로 합당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가 이런 제도를 고민할 때 첫 번째로 고려해야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를 활용하는 직원들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채용 단계에서나 복지 제도 설계 과정에서 고려되었느냐는 점이다. 사실 조직이 커질 수록, 아무리 채용 단계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문턱을 높이더라도 모든 조직 구성원의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100% 확률로 보장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만약 소수의 직원들이 부정하게 혹은 책임감 없이 복지 제도를 활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지가 이런 복지 제도 설계에 정말 중요한 요소다. 만약 누군가가 반복적으로 부정하게 복지 제도를 활용한다면 책임감 있게 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의욕을 저하 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이는 곧 조직 전체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마지막은 이런 제도가 진정으로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이바지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최근의 스타트업 투자 붐 이전에 기업은 ‘누군가의 돈’으로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었다. 창업자가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이를 고객에게 인정받아 돈을 벌면 그것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채용하는 식이 기본적인 기업의 운영 형태였다. 다만 그러다 보니 소수의 창업자나 오너, 대표이사의 사익을 위해서만 기업의 방향이 결정되고 이익이 분배되는 형태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많은 스타트업들이 외부의 큰 투자를 받아 빠르게 성장을 이루고 있고, 과거 세대와 다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창업자와 대표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은 조직원들의 성장과 그들의 이익, 더 좋은 근무 환경에 집중하고 이에 투자한다. 그 만큼 기업을 바라보는 창업자, 대표, 구성원들의 생각과 시각이 달라진 셈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결국 기업은 이익을 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2-3년간 불마켓을 경험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돈이 마르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해 왔다. 그런데 사실 그건 착시였을 뿐 기업은 이익을 내지 않으면 돈이 마른다. 그러니 조직 전체가 생산성을 높이고 그 결과 지속적인 이익을 만들 수 있어야만 조직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복지 제도나 업무 환경이라는 ‘규칙’은 결국 우리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어떤 회사에게 이 ‘생산성’이 개개인의 창의성과 연결될 수 있고, 어떤 회사에게는 특정 시간을 잘 채워주는 것이 생산성의 핵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던 이런 생산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만 갑자기 회사가 힘들고 외부 환경이 척박해진다고 우리가 정한 ‘규칙’을 깨고 없애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까②>에 계속-
이진열 | 한국시니어연구소 대표
서울대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였으며, 재학생 창업자가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한 최초의 사례였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창업에 뛰어들어, K-Pop 팬덤 서비스로 스타와 가상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이돌'을 창업해 글로벌 1400만 다운로드라는 성공과 업계 주목을 한몫에 받았다. 하지만, 결국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지 못했고 복잡한 지분구조 문제로 고통스러운 매각을 진행해야만 했다.
첫 번째 창업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마이돌의 공동 창업자였던 김선중 CTO와 함께 재창업한 회사가 한국시니어연구소이다.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가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고, 10조원에 이르는 요양시장의 시장성을 확인하고, 당장 개인사업자로 방문요양센터를 창업하며 시장의 문제점과 사업기회를 포착했다.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오프라인 중심의 요양산업을 IT기술과 서비스로 혁신하는 실버테크 기업으로, 설립 2년만에 누적 투자액 123억을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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