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를 더 둘러보려는데 소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 은행의 인공지능(AI) 비서가 메시지를 띄웠다. “이번달 지출이 평소보다 7% 늘었네요. 소비 리포트를 보시겠어요?” 메시지를 클릭하자 소비 현황 그래픽과 예산 관리를 위한 도움말이 뜬다. 몇 년 뒤면 기대할 수 있는 가상현실 속 금융 서비스의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국내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VR 브랜치(지점)’를 구축하고 있다. 작년 9월 VR 콘텐츠 전문기업인 쉐어박스와 손잡고 연구를 시작해 메타버스 안에 가상 영업점을 만들고 1년 만에 은행 코어뱅킹과 메타버스를 연결해 VR 환경에서도 송금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가상지점을 둘러보거나 은행원과 상담하는 상호작용 위주의 초기 단계에서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국민은행의 VR 브랜치 실험을 현장 지휘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인사이트지점의 방기석 점장은 “지금은 기술 부족과 각종 규제 문제가 있어 실제로 가상현실에서 금융업무를 보려면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10여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메타버스 시대가 오면 소비자가 바로 뱅킹 서비스를 쓸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금융 서비스와도 연동할 수 있는 개방형 메타버스 플랫폼이 늦어도 2~3년 안에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이트지점에 설치된 VR 기기를 머리에 쓰고 핸드 트래킹 기계를 양손에 쥐자 눈앞에 VR 브랜치의 모습이 펼쳐졌다. 세련된 로비를 지나 아늑하게 꾸며진 VIP라운지에서는 지점장에게 자산관리를 위한 투자성향 분석과 포트폴리오 상담을 받을 수 있었고, 실제 은행 지점처럼 행원 아바타가 앉아 있는 창구에선 자산을 조회하고 송금도 할 수 있었다. 손을 움직여 화면 가득 떠오른 스마트폰 화면을 클릭해 보낼 계좌와 금액,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송금이 끝났다. 현실에서 모바일 뱅킹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이었다.
디지털 영업점 고객 한 명마다 전담 직원이 배정돼 쪽지, 화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24시간 실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은행은 하루 평균 1억5000만 건 넘는 앱 로그 정보와 빅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빠르면 1분, 아무리 늦어도 2시간 안에 찾아주고 때로는 먼저 제시한다. 생일이나 기념일, 거래 기간 등에 따라 이벤트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은행이 비대면 고객에게도 대면 채널 못지않은 밀착 서비스를 해주겠다는 취지다.
기존 은행 지점은 오지 않는 소비자를 기다리는 대신 아트 큐레이션, 미술 경매처럼 금융과 연계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 또는 고객이 더욱 개인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뱅킹(PB) 라운지로 꾸밀 수 있다. 하나은행은 A기업 임직원, B아파트 주민 등 손님별 특성에 맞춰 재단된 가상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 브랜치’란 이름의 이 가상 영업점은 지난해 4월 출시 후 현재까지 8000개가 개설됐다. 방문자 대비 상품 가입률도 10%를 웃돌아 일반 뱅킹 앱보다 높다.
빈난새/박상용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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