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크리스천스쿨의 컴퓨터실. 교사의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쓰는 코딩 프로그램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개발한 ‘스크래치’다.
빈센트 존슨은 동작, 소리 등의 명령을 사용해 영어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꿔주는 번역기를 만들어 실행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것이라며 스크롤 게임을 비롯해 20여 개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컴퓨터 수업이 끝나자 학생 12명은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장난감을 코딩 프로그램으로 직접 구동하는 ‘레고 로보틱스’ 수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생들은 초등학교에서 레고 로보틱스나 스크래치 등 기초 코딩 프로그램을 활용해 컴퓨터 과학 탐색의 시기를 거친다. 중학교에서는 관심 있는 학생을 중심으로 파이선 등 실제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운다. 팀을 이뤄 앱을 개발하고 사용자를 모아서 베타테스트를 하는 등의 경험도 쌓는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려는 고교생은 대학에서 전공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AP 컴퓨터사이언스 과목을 미리 이수한다. 일부 고교생은 그동안 배운 것을 토대로 앱을 개발해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한다.
초·중등학교에 코딩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어플라이드컴퓨팅파운데이션(ACF)의 김소연 부대표는 “한국은 기술적인 부분 교육에 집중하는 데 비해 미국은 훨씬 폭넓게 코딩과 컴퓨터공학을 가르친다”며 “팀을 이뤄 함께 기초연구를 하고, 결과를 발표하고, 로봇을 만들어 프로그램으로 구동하면서 리더십과 팀워크까지 함께 배운다”고 말했다. 앱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과정과 비슷한 절차를 거치면서 배운다는 설명이다.
AI 패권을 두고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은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내놓으며 일찌감치 AI 시대 준비에 들어갔다. 중국의 학제는 9년 의무교육과 3년 고등교육 과정으로 나뉘는데, 초등학교에서만 통상 68시간 이상 컴퓨터 과목을 가르친다. 한국의 네 배 수준이다. 중학교 때부터 오픈소스의 특징과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학습하고, 고교 때는 네트워크와 AI개론을 배울 정도로 난도도 높다. 센스타임, 아이플라이텍 등 중국 유명 AI기업들이 참여해 교과서를 만들고, 이들 기업이 765개 학교에서 AI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산학 협력도 활발하다.
제조업 강국 독일의 교육 커리큘럼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중학교에 해당하는 9학년부터 전문적 수준의 AI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특징이다. ‘최초의 챗봇’ 엘리자 프로그램의 기본원리, AI의 성능을 측정하는 튜링테스트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이들 국가의 교육 지향점은 컴퓨팅 사고력의 함양이고,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도 전문성을 갖춘 민간기업을 선별해 협력하는 등의 교육방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이시은 기자 philo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