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라톤 '서브 2'

입력 2022-09-26 17:35   수정 2022-09-27 00:25

마라톤 정규코스가 42.195㎞로 최종 확정된 것은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였다. 이때 우승 기록은 2시간55분18초4였다. ‘마(魔)의 2시간30분 벽’을 깬 이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2시간29분19초2)다. 이후 33년 만인 1969년 2시간10분대가 깨졌고, 반세기 뒤인 2018년 베를린마라톤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1분39초의 최고기록을 세웠다.

킵초게가 그제 같은 장소에서 2시간1분09초로 종전 기록을 30초나 앞당기며 인류의 꿈인 ‘서브(sub) 2(2시간 이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에 바짝 다가섰다. 그는 비공인 대회인 2019년 오스트리아 빈 ‘특별 레이스’에서 1시간59분40초로 2시간 벽을 깬 적이 있다. 100m를 17초에 주파한 경이로운 기록이다.

그의 신체 조건은 남다르다. 키에 비해 체중이 적게 나가고 팔다리가 길며, 공기가 희박한 케냐 고산지대에서 자랐다. 스포츠계에 따르면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춘 선수가 케냐에 특히 많다. 인구 4800만 명인 케냐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마라톤 우승자의 약 80%를 배출했다. 여자 마라톤 최고 기록 보유자인 브리지드 코스게이도 케냐 선수다.

이들은 서구 선수보다 체질량 지수와 뼈 구조가 다르고, 심폐지구력을 키워주는 헤모글로빈 수치도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한때 수십 리 등하교 길을 맨발로 달린 덕분이라는 설이 있었지만, 금세기 들어 버스로 등하교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근거 없는 얘기다.

마라톤의 인간 한계 기록은 얼마일까. 미국 운동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는 1시간57분58초로 내다봤다. 여기에는 과학적인 관리 기법과 첨단기술 발달이 전제돼 있다. 전문가들은 발의 앞꿈치로 착지해 충격력과 접촉 시간을 줄이고, 탄수화물 비율을 조절하면서 운동화 설계 기술력까지 높이면 2시간 벽을 공식적으로 깰 수 있다고 본다.

킵초게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2021년 도쿄올림픽을 연속 제패했다. 그가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인류 최고의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 우리나라 최고 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07분20초다. “모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격언은 스포츠뿐 아니라 과학기술 발달과 문명 발전에도 적용된다. 우리 인생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것 또한 이와 닮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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