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자존심 '박살'…"유럽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평가

입력 2022-09-27 06:55   수정 2022-10-26 00:01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연일 바닥을 치는 가운데 영국 중앙은행(BOE)이 사상 초유의 긴급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한때 제기됐다. 영국 국채는 유럽연합(EU)의 ‘문제적 국가’로 통하는 이탈리아, 그리스 국채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
유로존 최약체 그리스, 이탈리아에도 밀린 영국 국채
26일(현지시간) 미국 달러·영국 파운드 환율은 장중 1.0349달러로 밀리며 1985년 이래 최저치를 찍었다. 원인은 영국 정부에 있었다. 지난 23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2027년까지 총 450억파운드(약 68조원)를 감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25일에는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추가 감세 정책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정부 부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다. 영국 정부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채권을 대규모로 찍을 예정이어서다

영국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자 시장 참여자들은 영국 파운드화와 영국 국채 ‘팔자’에 나섰다. 이날 장중 한때 파운드화 가치가 1.035달러 아래로 밀린 이유다. 전문가들은 파운드 약세를 강(强) 달러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짐 오닐 전 영국 재무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신임 영국 총리의 위험한 정책과 영국 중앙은행의 소심함이 합쳐진 결과가 파운드 약세”라고 말했다. 이날 스카이뉴스는 보수당 의원 중 일부가 트러스 총리 불신임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영국 국채는 유례없는 푸대접을 받았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영국 국채 5년물 금리는 장중 한때 연 4.535%로 상승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국채 가격 하락을 뜻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영국 국채를 팔아치운 결과다. 반면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 국가)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국채 5년물 금리는 연 4% 이하였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국가 부채 부담이 커 유로존에서 국채 금리가 높은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국가 경제 신용도가 낮을수록 위험을 반영해 국채 금리가 높은 경향이 있다. 특히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유럽연합(EU)이 예의주시하는 주요 지표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높아져 EU의 경제대국 독일의 국채 금리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우려가 일어나는 이유다.

그나마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아직 이탈리아, 그리스보다는 낮아 마지막 ‘체면’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그리스, 이탈리아의 10년물 금리 격차는 계속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믿을 구석은 英 중앙은행이었는데...
파운드화 가치 폭락세가 심상치 않자 이날 시장에서는 ‘BOE 등판론’이 퍼졌다. BOE가 이번주 중 긴급 회의를 소집해 기습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BOE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며 이날 파운드화 가치는 장중 낙폭을 일부 회복했다.

BOE가 만약 긴급 회의를 열어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이는 사상 초유의 일이다. BOE는 1997년 독립 기관이 된 이후 정례적인 회의에서만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BOE는 지난 22일 통화정책위원회(MPC)를 열어 기준금리를 1.75%에서 2.25%로 0.5%포인트 올렸다. 두 번 연속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이다. 다음 MPC는 11월에 열린다.

그러나 이날 BOE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시장을 달래면서도 긴급 회의까지는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이와 함께 BOE는 HSBC, 바클레이스 등 영국 은행 8곳을 대상으로 내년 여름까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바실레이오스 지키오나키스 씨티그룹 EMEA 외환 전략 대표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영국은 현재 통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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