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당대표 취임 이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섰다.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 슬로건인 '기본소득'을 내걸고 정쟁보단 민생에 방점을 찍은 연설을 마쳤다.
전당대회 때부터 강조해 온 '유능한 대안 정당' 이미지도 적극적으로 부각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 현안에 대한 비판은 가급적 삼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 논란을 겨냥해선 "제1당으로서 이번 외교 참사의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선입관을 버리고 상상을 한번 해 보라. 가난을 증명한 사람을 골라 지원하지 않고, 모두를 지원한 후 불필요한 몫은 회수하면 어떻겠냐"며 "탈락이 두려운 노동 회피가 없어질 것이고 생활 수준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낙인효과도 없다. 문화예술처럼 소득은 적지만 만족도 높은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미래는 최소한의 삶을 지원받는 사회가 아니라, 기본적 삶을 보장받는 '기본사회'여야 한다고 믿는다"며 "소득, 주거, 금융,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 등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도록 사회시스템을 바꿔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생부터 사망까지 기본적 삶이 보장되고 미래와 노후의 불안이 사라져야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하는 사회, 재난이 닥쳐도 걱정 없는 사회가 가능해진다"며 "자녀가 내 삶의 짐이 되지 않고,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 믿어져야 아이도 낳고 행복한 미래도 꿈꾸지 않겠냐"고 했다.
이 대표는 "연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초대기업 법인세를 깎아주고, 주식 양도소득세 비과세기준을 1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높이면서, 3주택 이상의 종부세 누진제를 폐지하려 한다"며 "특혜 감세로 부족해진 재정은 서민예산 삭감으로 메우겠다고 한다"고 했다.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저비용 고효율이 입증된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같은 청년예산도 대대적으로 삭감했다. '서민 지갑 털어 부자 곳간 채우기' 정책은 민생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인 양극화 불평등을 확대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최선을 다해 막을 것"이라는 저지 의지를 내보이면서 ▲자영업자·소상공인 금리 부담 감소 ▲집중호우 등 피해 지원금 확대 ▲납품단가 연동제 ▲화물차 안전 운임제 유지 ▲쌀값 안정법 통과 ▲부·울·경, 충청권, 광주·전남, 대구·경북권 메가시티 구상 현실화 등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세계적 무한경쟁 속에 우리만 거꾸로 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올려야 한다"며 "애플, 구글 등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은 RE100을 채택했고, 최근 삼성전자도 가입했다.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을 빠르게 늘리지 않으면, 기후 위기 대응 실패는 물론 제조업의 해외 유출과 경쟁력 악화를 피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는 '국회 기후 위기 탄소중립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대립 아닌 보완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감축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탈석탄·감원전·재생에너지 확대'가 에너지정책의 미래"라고 했다.
국회에 '인구 위기와 초저출생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 이 대표는 이 특위를 통해 ▲상병수당 본격화 ▲기초노령연금 ▲선택적 모병제 도입 ▲신혼부부 주거 환경 보장 ▲단계적 정년 연장 확대 등의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이 대표는 "출산은 개인이 하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봄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영유아, 아동, 간병, 장애인, 어르신 등 '5대 돌봄 국가책임제'를 확대하겠다. 아동수당을 확대하고, 아버지에게도 육아휴직을 할당해 보육 책임을 나눠지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안타깝게도 며칠 전 대통령의 영미순방은 이 정부의 외교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조문 없는 조문외교, 굴욕적 한일 정상 회동은 국격을 훼손시켰다. 전기차 차별 시정을 위한 IRA 논의와 한미통화스와프는 이번 순방의 핵심과제였음에도 꺼내지도 못한 의제가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에 연습은 없다. 초보라는 말로 양해되지 않는 혹독한 실전"이라며 "오판 하나, 실언 하나로 국익은 훼손되고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제1당으로서 이번 외교 참사의 책임을 분명히 묻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책임을 국민과 언론 야당에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고성이 나오기도 했다.
이 대표는 "한반도에 신냉전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는데, 이는 평화의 위기다.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며 "대화를 재개하고, 인도적 지원, 보건의료 협력 같은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닌 사업부터 남북협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조건부 제재 완화(스냅백)와 단계적 동시행동'을 제안했다. 그는 "약속 위반 시 즉각 제재 복원을 전제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상응하는 대북 제재 완화 조치를 단계적으로 동시에 실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그릇된 관행과 태도에는 단호하게 변화를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 ▲결선투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의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합의되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바꿔 가면 된다. 개헌 특위가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헌안을 만들고, 2024년 총선과 함께 국민투표를 한다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87년 체제'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본인을 향한 여권의 '방탄' 비판을 의식한 듯 "면책 특권 뒤에 숨어 거짓을 선동할 수 없도록 하겠다"면서 국회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 소환제로 국회의원도 잘못하면 소환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우리의 미래는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기대되는 나라여야 한다"며 "없는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공감을 넓히며 점진적으로 기본사회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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