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시중은행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횡령 배임 등 금융사고와 이상 외화 송금 사태를 따져보겠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고환율·고물가·고금리에 무역수지까지 악화하면서 경제 복합위기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은행장들을 한꺼번에 국감장에 세우겠다는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에선 은행장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의원들이 호통 치며 망신 주는 장면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권에선 2017년 이후 98건, 911억원에 달하는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은행을 거쳐 해외로 빠져나간 ‘수상한’ 외화 송금 규모도 10조원을 웃돌면서 은행권의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증인 신청 사유에 관계없이 무조건 은행장부터 부르는 국회의 행태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은행장들을 국감장에 불러 세운다고 내부 통제 문제가 개선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장 대신 감사부와 준법감시부 임원이 국감에 참석하는 게 실질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는 점에서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명령휴가제 대상 범위를 확대하거나 직원 신용조회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 외화 송금도 자금 흐름 추적과 함께 증빙서류 확인 등을 통해 은행의 책임 여부를 따질 방침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에 따른 원자재값 상승으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중단하고 고금리 여파로 자영업자의 고통이 커지면서 금융권의 방파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은행장들을 한꺼번에 부를 필요가 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은행장들은 분초를 쪼개며 리스크 점검 회의 등을 주재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은행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 사안을 답변하는 것은 경제에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선 여야 의원들이 언론의 이목을 끌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를 국감 증언대에 세우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경제인은 17대 국회에서 연평균 52명이던 것이 18대 국회 77명, 19대 125명, 20대 159명으로 계속 늘었다. CEO를 증인으로 신청해놓고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 대기 시간이 서너 시간에 이르지만 질의 시간은 개인당 2~3분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금융사 대관담당 임원은 “성실한 답변을 준비해 가지만 정작 답변 시간을 주는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김보형/빈난새 기자 kph21c@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