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은 결국 잡힐 것이다. 어떤 소비지표도 금리 상승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돈을 푸는 것만큼이나 거둬들이는 데도 거침없는 미국 중앙은행(Fed)은 경기 조절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하다. 물가가 잡히면 곧바로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회복을 꾀할 것이다. 가히 엿장수 멋대로다. 세계 모든 나라가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미국의 솜씨를 지켜보겠지만 Fed가 다른 나라들의 경제 사정까지 헤아려주지는 않는다. 킹달러가 주변 국가 통화와 주식 암호화폐 등의 자산을 모조리 초토화시켜도 유감 한마디 없지 않나. 언제나 그렇듯이 경제는 각자도생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특효약은 없다. 국회나 언론은 정부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계 기업 정부 모두 긴축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당면한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치지만, 한국 소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호조다. 이달 주요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5% 안팎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최신 통계인 7월 신용카드 승인 실적도 15%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 주말 고속도로는 행락객들로 만원이다. 그렇게 환율 걱정을 하면서도 해외여행객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정부는 어려움을 호소하기는커녕 에너지 절약 같은 상투적 캠페인에도 손을 놓고 있다. 불요불급한 외환 수요를 줄이라면서 정작 본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거대 야당은 그렇잖아도 적자인 재정을 압박해 돈을 풀라는 요구를 되풀이한다. 적자국채 발행이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혹여 서민 금리와 국채 금리가 따로 논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모두 코로나 시대에 늘어난 소득과 유동성의 끝자락이다.
이제 곧 파티가 끝난다. 본격적 경기 하강이 올겨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금리 재인하를 통해 불황 탈출에 나서겠지만 한국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설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우리 경제는 지난 10여 년간 구조조정을 하나도 안 했다. 그러니 대우조선해양 같은 기업이 지금껏 살아 불법파업의 온상이 돼버린 것이다. 이번 위기를 의미 있게 넘기려면 부채와 비용을 줄이는 고통 속에서도 경제 체질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운동선수가 겨울에 몸을 만들어야 봄·가을 시즌을 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재정 금융 교육 노동 부문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재정건전성을 의심받고 있는 영국 파운드화의 폭락을 보라. 빚더미에 올라 있는 한 선진국, 복지국가라는 위상은 모두 허명이다. 기업들은 상시적 경비 절감 노력을 하되 4~5년 뒤를 내다보는 미래 투자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무역수지 적자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국 원화가 다른 통화에 비해 유난히 많이 떨어진 이유도 사상 최대 무역적자 때문이다. 정부는 경상수지 결정력이 큰 상품수지가 흑자여서 괜찮다고 하지만 엉뚱한 호도다. 상품수지가 좋아서 안심해도 된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국 기업에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요하는지 묻고 싶다. 무역적자 기저에는 주요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저하가 있다. 반도체 경기 운운할 때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불황이 찾아오면 끝난다. 주가는 낙폭이 지나치면 반등한다. 하지만 경제는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 구조개혁 타이밍을 놓치면 인플레이션이 물러가도 고금리 고환율의 재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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