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마음에 눈 쌓인 공원을 달리는데, 어느 순간 설경 속 호랑이 사냥꾼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김 작가는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독립운동가 외할아버지의 호랑이 같은 기개가 떠올랐다”고 했다. 집으로 뛰어간 그는 노트북 앞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한 첫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을 지난해 12월 미국에 내놨다. 미국에서만 3만 부 넘게 팔렸다. 현지에선 ‘재미동포 여성 작가가 쓴 한국 역사 소설’이란 점에서 ‘제2의 이민진’ ‘제2의 파친코’로 부른다.
김 작가는 28일 <작은 땅의 야수들> 국내 출간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파친코>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와 비교되는 것만도 영광”이라며 “다만 <파친코>가 가족을 위한 생존 소설이라면 <작은 땅의 야수들>은 나라를 위한 투쟁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한반도를 배경으로 그렸다. 가난 탓에 기생으로 팔려 간 ‘옥희’와 호랑이 사냥꾼 ‘경수’, 독립운동군 ‘명보’ 등이 격동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는지 그린다.
인천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아홉 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즐겨 읽었다”며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게 한국 이야기를 쓰도록 부추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2016년 영국 문학잡지 ‘그란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쓰는 데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집필 기간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배고픔”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출판사를 그만둔 뒤에는 99센트짜리 콩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톨스토이, 최인호의 책을 읽으며 작가를 꿈꾸던 김 작가는 이제 상당한 팬을 거느린 소설가가 됐다. 그는 “오늘 아침에는 부탄에 있는 팬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며 “두 번째 장편소설은 발레를 주제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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