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야심 차게 출범시켰던 출판유통 통합전산망(통전망)이 1년 만에 파국을 맞았다. 출판 업계가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출판사들의 모임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출판유통통합 전산망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9일 발표했다. “통전망은 출판 업계와 유통 업계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에 대해 실망과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작년 12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열리고 있는 통전망 운영위원회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운영위는 출판단체·서점·유통사·도서관 등을 대표하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출협은 “운영위원회에 참가하면서 출판사의 신간 정보, 서점의 도서 판매정보, 서점의 도서 재고 등 통전망 운영을 위한 핵심 정보가 확보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 목적에 맞게 운영하게 될 가능성이 없고, 애초 약속했던 운영방안 개선을 위한 개방적 논의도 진행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출협은 특히 지난 8월 운영위원회 회의를 통해 더 이상 회의에 참여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굳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운영위원회는 규정에 따라 사업 예산을 심의·의결하게 돼 있지만, 한 번도 그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협은 “이런 지적에 대해 담당 문체부 담당자는 운영위원회 규정의 내용이 그런 논의 권한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는 엉뚱한 주장을 했다”며 “당분간 매년 20억원 가까운 예산이 집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성과를 내기는 힘들어 보이는 전망 없는 사업에 출협이 들러리를 설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통전망은 출판물의 생산·유통·판매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가 2019년부터 6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책 판매량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출판사들이 작가들에게 인세 지급을 누락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정식 개통 이후에도 제 기능을 못 하면서 ‘깡통’이란 비난을 들어왔다.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통전망은 출판사들이 직접 도서 정보를 입력해야 해 빈 데이터가 많았다. 저자가 직접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없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통전망에 들어가 봐도 별 내용이 없다보니 다들 관심을 끊게 됐다”며 “이미 대형 출판사들은 자기네 신간 데이터를 전혀 올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통전망을 운영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진흥원 관계자는 “통전망에는 2875개 출판사가 가입해 있고, 도서 서지 정보만 해도 약 16만개가 입력돼 있다”며 “미비한 점은 있지만 계속해서 기능 개선을 해왔다”고 말했다.
출협에서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선 “일정한 상의 문제로 당장 반영을 못 한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반영해나가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같은 경우도 정착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통전망이 잘 될 수 있도록 출협과는 다시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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