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국의 대외건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원화 가치는 눈에 띄게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킹(king)달러’에 따른 한·미 금리 역전과 위안화 약세, 파운드화 급락 등 대외 요인이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더 이상 대외 요인이나 환투기 세력에 책임을 돌릴 때가 아니다”며 “한국의 경쟁력에 근본적인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약화가 원화 약세로 이어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는 수출이다. 올 하반기 들어 수출이 큰 폭으로 둔화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330억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8.7% 감소했다. 추석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단축(전년 동월 대비 1.5일)을 감안해도 하루 평균 수출액이 25억4000만달러로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3.4%에 불과했고 승용차(-7.5%), 무선통신기기(-25.9%), 철강 제품(-31.6%) 등 주요 품목 수출도 급감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다.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수출 비중은 35.6%였다. 중국(19%), 영국(14.7%), 일본(12.7%·2020년), 미국(6.8%) 등에 비해 높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 나라의 통화에는 그 나라의 미래 가치가 반영된다”며 “수출 주도국인 한국에 대한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면서 원화 가치 하락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 체감경기는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9월 전 산업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 대비 3포인트 하락한 79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7개월 만의 최저치다. 한은 관계자는 “주요 제품 가격 하락과 환율·물가 상승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해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한 소비도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올 상반기 지급카드 이용액은 하루 평균 3조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4%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영향이다. 하지만 한은이 발표한 이달 소비자심리지수는 91.4로, 지난 6월에 이어 4개월 연속 ‘기준치(100)’를 밑돌았다.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란 뜻이다.
올해보다 내년 경제 상황이 더 나쁠 수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 요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1.9%로 낮췄다. 그러면서 “세계 경제의 가파른 둔화가 한국의 수출과 설비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보다 낮은 2.2~2.3%로 보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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