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관계자는 29일 일양약품 수사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통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제약·바이오 회사에 대한 첫 수사”라고 말했다. 증시와 업계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경찰이 일양약품 수사를 본격화한 이유는 코로나19 치료 후보 물질 ‘슈펙트’의 효능을 부풀려 발표했다는 물증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판단에서다. 슈펙트는 일양약품이 2012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18호 국산 신약이다.
일양약품은 2020년 초 슈펙트가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려대 A교수에게 임상 시험을 의뢰했다. 일양약품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2020년 3월 13일 ‘약물 투여 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48시간 내 대조군 대비 70% 줄어들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주가는 상한가로 직행했다.
하지만 경찰은 A교수 측이 진행한 연구 결과와 회사 측 발표 내용이 명백히 다르다는 증거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슈펙트가 대조군보다 훨씬 더 좋은 치료제인 것처럼 표현돼 있지만 A교수의 보고서는 이와 다르다”고 했다. 일부 데이터는 유리한 내용만 발췌하고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또 대조군으로 알려진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 도야마화학의 독감치료제 ‘아비간’ 등보다 더 좋은 효능을 보였다는 듯한 주장을 펼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 측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명백히 다른 내용의 보도자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 발표 1년 뒤 일양약품은 러시아에서 진행하던 임상 3상에서 슈펙트의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 일양약품은 경찰 수사에 대해 “현재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오너 일가가 개발 과정의 난제와 관련한 정보를 미리 파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양약품은 슈펙트 임상 3상을 러시아의 알팜에 맡겼다. 하지만 알팜은 2020년 7월 아비간으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승인을 받았다. 임상 대상 환자 모집이 쉽지 않았던 당시 상황상 두 회사의 임상 시험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를 사전에 파악한 경영진이 이 시기 주식 매도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업계에선 다른 제약·바이오 회사로 수사가 확대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 초 업계에선 약물 재창출 방식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열풍이 불었다. 신풍제약이 대표적이다.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인 피라맥스를 코로나19 치료제로 바꾼다는 발표에 2020년 2월 3일 6470원(종가 기준)이었던 주가가 2020년 9월 21일 장중 21만4000원까지 30배 이상 올랐다. 이 같은 주가 폭등은 여러 제약회사를 자극했다.
한 제약회사 임원은 “회사가 보유한 약물 중 하나를 코로나19 치료제로 임상 시험해보라는 지시가 경영진에서 거의 매일 내려왔다”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고 2020년 초 상황을 전했다. 경영진 압박에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추진하면서 무리수를 둔 회사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다만 경찰 측은 “일양약품 수사에 집중한 뒤 수사 범위를 넓힐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우섭/권용훈/한재영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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