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사진)가 집권한지 4주도 안 돼 정치 위기에 빠졌다. 집권당인 영국 보수당 지지율이 노동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 가운데 보수당 지지자 중 60% 이상이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러스 총리는 금융시장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긴급회담을 열기로 했다.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인 가디언은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28~29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노동당의 지지율이 54%를 기록해 보수당(21%)을 33%포인트 앞섰다”고 발표했다. 이렇게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진 건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21일 설문조사 때보다 보수당 지지세가 약화됐다. 당시 조사에선 지지율이 노동당 45%, 보수당 28%로 나왔다. 더 두드러지는 점은 보수당 지지자들의 외면이다. 이번 투표에선 2019년 보수당에 투표했던 이들 중에선 단 37%만이 보수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찰스 워커 보수당 하원의원은 “이런 여론조사가 반복되면 보수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트러스 총리에 대한 지지기반이 열악하다는 방증이다. 트러스 총리는 총리직을 가렸던 보수당 경선에서 리시 수낙 전 영국 재무장관과 맞붙었을 때도 최종 투표 전까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보수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중간 투표에선 표심을 얻지 못하다가 보수당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최종 투표에 가서야 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다. 당내 의원들의 지지가 열악했던 상황에서 보수당 지지자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게 이번 조사로 드러난 셈이다.
보수당 지지자 다수가 변심한 까닭으로는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 정책이 꼽힌다. 지난 7일 총리직에 임명된 트러스 총리는 23일 450억파운드(약 71조원) 규모 감세책을 내놨다. 은행가의 소득 상한을 폐지하고 소득세 최고세율 45%에서 40%를 낮추는 등의 조치가 포함됐다.
24일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감세 발표가 “영국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19%에 불과했다.“감세가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63%에 달했다.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반발 기류가 감지됐다. 29일 영국 매체인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일부 보수당 의원들도 소득세율 상한을 올리는 이번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당 안팎의 공격에도 트러스 총리는 감세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29일 BBC라디오의 인터뷰에서 그는 “특정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며 “자신의 경제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혼란 원인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글로벌’ 요인을 꼽았다.
야당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레이첼 리브스 노동당 대변인은 이날 트러스 총리의 인터뷰에 대해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며 “보수당 의원들은 자살공격(가미카제) 같은 예산안을 되돌릴 수 있도록 의회 소집을 요구하는 노동당에 합류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감세책에 따른 재정 악화 우려로 지난 26일 파운드화 가치가 1.03달러 수준까지 급락하고 27일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가 연 5%를 웃도는 등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트러스 총리도 비상 행동에 나섰다. 30일 트러스 총리는 독립 재정 자문기관인 예산책임처(OBR)의 리차드 휴즈 의장과 콰시 콰텡 재무장관과 회담을 갖기로 했다.
OBR은 영국 정부의 재정 계획에 따른 경제 전망을 내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트러스 총리의 감세책을 반영한 경제 전망의 첫 초안을 다음 달 7일, 보고서를 오는 11월 23일 내놓을 예정이다. OBR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놓을 경우 트러스 총리의 감세 정책 추진에 가해지는 부담도 더 커질 전망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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