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일 입국했다. 방한 목적을 묻는 질문에 "비즈니스"라고 짧게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ARM의 (지분)매각을 위한 '세일즈'가 가장 큰 목적으로 분석된다.
손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는 게 유력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손 회장이 10월 서울에 오는데 아마 그때 무슨 제안을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도 ARM과 삼성전자의 전략적 제휴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최태원 SK 회장과의 만남 가능성도 거론된다. SK그룹은 ARM 인수를 검토 중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3월 "ARM은 한 회사가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략적 투자자들과 함께 컨소시엄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었다. 현재 인텔, 퀄컴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ARM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ARM은 1978년 설립된 영국의 반도체 기업이다. 본사는 케임브리지다. 흔히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이라고 불린다.
반도체를 미술작품에 비유하면 ARM은 밑그림(설계자산)을 그려주는 업체다. 삼성전자, 애플, 퀄컴 등의 반도체 기업은 ARM에서 밑그림을 받고 그 위에 각자 개성을 발휘해 미술 작품(반도체)을 완성하는 셈이다. “ARM이 없으면 반도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모바일 IP에 강점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퀄컴 스냅드래곤, 애플의 A 시리즈 등 스마트폰용 AP 설계 및 판매업체들은 모두 ARM에 의존한다.
ARM의 수익원은 수수료다. 특허에 기반한 설계자산을 제공하는 대신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로열티를 받는다. ARM은 비상장사라서 정확한 실적은 ‘비공개’ 상태다. 상장사 시절인 2017년엔 매출 약 1조500억원, 영업이익 약 2600억원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9년 ARM 매출은 약 2조1200억원, 2020년 매출은 2조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ARM을 매물로 내놨고 2019년 엔비디아가 당시 가치로 400억달러(주식 215만주+현금 120억달러)에 인수하기로했다. GPU에 강점이 있는 엔비디아가 AP나 CPU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의 경쟁당국이 앤비디아의 M&A를 반대하면서 올초 젠슨 황의 큰 그림은 지워졌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면 시장의 경쟁질서가 흐려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공공재' 성격을 가진 ARM을 통해 퀄컴 인텔 AMD 같은 경쟁사들을 압박할 것이란 얘기다.
현재 ARM은 소프트뱅크 산하의 비상장기업으로 남아있다. 투자금 환수가 필요한 손정의 회장은 ARM을 미국 또는 영국 증시에 상장시키면서 일부 지분을 매각하거나 또는 지분을 모두 매도하는 등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어찌됐든 ARM 지분 전체 또는 일부를 팔아야하는 손 회장 입장에선 이번 방한에 많은 것을 걸어야하는 상황이다.
이런 삼성전자가 반도체산업에서 사실상의 '공공재' 역할을 하는 엔비디아를 인수한다고하면 경쟁기업과 각 국 경쟁당국이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A, B 기업이 M&A한다고 할 때 A, B기업이 영업을 하고 있는 국가의 경쟁당국(공정거래위원회)은 M&A의 '경쟁제한성'을 심사하고 승인 또는 불허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한 국가라도 허가하지 않으면 기업 간 M&A는 좌초된다.
한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최근 "ARM을 살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경쟁사들과 미국, 중국 등이 가만히 있겠냐"며 "사실상 M&A는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로 거론되는 건 삼성전자의 ARM 일부 지분 인수다. 삼성전자 역시 ARM과 협업하고 있기 때문에 지분 인수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전략적 제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2012년 삼성전자는 초미세공정의 필수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 지분 3%를 샀다. 중간에 1.5%를 팔았지만 지난 6월 말 기준 ASML의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가치는 3조8757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런 이유로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의 만남이 말그대로 '만남'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급한 건 재무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손정의 회장이고 삼성전자는 급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삼성 고위 관계자는 개인 의견을 전제로 "시간은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의 편"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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