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면면만 봐서는 대기업 종사자 못지않은 중소기업 직원이 적지 않다. 다양한 분야의 실무를 익힌 중소기업 출신이 대기업에 가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반면 유명 대기업의 ‘간판’만 보고 중소기업으로 모셔 온 인사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핀잔이나 듣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선 크게 드러나지 않는 차이를 조직 레벨로 확대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이 민망할 정도로 벌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조직의 목표와 해야 할 임무, 예상되는 위험 요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기업을 직원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절대로 넘어설 수 없기에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가르는 시스템의 차이를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 최근 국정 전반에서 ‘시스템 부재(不在)’라고 느껴지는 일을 접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큰 조직에는 큰 조직의 논리가 있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약하려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의 국정 시스템 이상 징후는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우선 윤석열 정부 출범 5개월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기관이 수두룩하다. ‘백년대계’ 교육을 책임질 교육부와 ‘연금 개혁’과 ‘과학 방역’이라는 큰 책무를 짊어진 보건복지부는 몇 달씩 수장 없이 공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후 조문 외교를 두고 뒷말이 무성한 데는 주영대사 부재가 한몫했다.
그나마 임명된 기관장 상당수는 대통령의 ‘전 직장’인 검찰 출신이다. 수많은 공공기관은 늦깎이로 책임자를 맞이하느라 뒤늦게 분주하다. 적합성·전문성·준비 부족 논란이 쉼 없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협업조차 여의찮다는 지적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기고 각국 중앙은행의 자이언트 스텝이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지만 경제팀은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무역적자는 커지고 ‘칩4 동맹’ 논의 등 세계 경제의 판도가 뒤바뀌는 변혁기를 맞이했지만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총리실은 제각각의 목소리만 낼 뿐이다. 뛰는 물가에 대한 아우성만 요란하지, 일사불란한 대응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비속어’ 청력 테스트에만 집중돼 있다.
세간에는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큰 시련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목표도 뚜렷하지 않고, 매뉴얼도 없는 듯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했다가는 ‘국정 시스템이 중소기업만도 못하다’는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서둘러 국격에 어울리는 시스템 운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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