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지난달 1일. 우리의 대응 여부를 묻자 국가안보실 관계자가 내놓은 답이다. 미국 행정부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는데 우리 정부가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는 취지였다.
실상은 조금 달랐다. 주미대사관이 대통령실 및 각 부처에 IRA 동향을 담은 보고서를 지난 8월 4일 전달한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8월 4일은 윤석열 대통령이 방한 중이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전화통화한 날이다. 그러나 대통령실 브리핑에 IRA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이후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차별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정상 외교를 펼쳤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을 모두 만나 우려를 전달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으로부터는 “창의적인 해법을 찾겠다”는 답도 들었다.
다만 사태가 커지기 전에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에서 IRA가 논의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펠로시 의장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사흘 뒤인 7일 법안이 미 상원을 통과했고, 12일 하원 문턱을 넘으며 속전속결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IRA 법안이 막 논의되기 시작한 단계여서 미국 측과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실 브리핑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기술동맹을 발전시키는 데 파트너십이 좀 더 구체화돼야 할 것”이라며 “미국 의회에서도 머리를 짜내고 한국과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미 의회가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 적극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외교안보 라인의 미숙한 일처리와 대응은 처음이 아니다. 뉴욕 순방 중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은 막판까지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다. 일본 정부의 비타협적인 자세도 문제지만, 순방 전 대통령실이 “(양국이) 한·일 정상회담에 흔쾌히 합의했다”며 성급하게 발표한 것도 화근이 됐다.
윤 대통령의 지난 순방 외교를 ‘외교참사’로까지 규정한 야당은 지난달 30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처리했다. “외교부 장관을 해임할 정도의 일은 아니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국회가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으냐”는 야당의 지적도 가볍게만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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