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세계 GDP 비중이 13%에 달하는 거대 경제권인 CPTPP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과 영국, 대만도 추가로 가입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한국은 CPTPP 가입 의사를 거듭 밝힌 뒤에도 여전히 신청서조차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강도 높은 대외 개방을 우려한 농축산업계의 반발을 우려한 탓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선진 통상국가가 한국이 나아갈 길이라면 메가 FTA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더 늦어지면 가입 비용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까지 가입하면 농축산업계 타격이 크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대외 비공개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CPTPP 경제효과 분석에 따르면 중국이 가입할 경우 앞으로 15년간 농축산업은 연간 2조2000억원, 수산업은 연간 2000억원의 생산이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이 미가입할 때는 4000억원 수준인 농축산업 피해가 중국 가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조사 결과다. 농축산업계는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CPTPP 가입에 따른 피해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찬성 진영에서는 농축산 피해는 과장되고, 무역효과는 과소 추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면 실질 GDP가 0.33~0.3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 경제에 혜택이 된다는 점은 일관된 평가다. 특히 농축산업계에 미칠 것으로 추정된 2조2000억원 규모의 피해액은 중국이 100% 시장을 개방한다고 가정하고 수입대체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똑같은 가정을 적용할 경우 CPTPP 가입에 따른 무역효과는 10조원을 넘어선다는 게 산업계의 설명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양허 기준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협상에 따라서 농축산업 피해 효과는 크게 상쇄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규범 수준이 높은 CPTPP 가입으로 한국 통상 수준이 질적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CPTPP가 시장 개방뿐 아니라 노동·환경 등을 포함한 선진적 통상 규범을 담고 있어서다. CPTPP에 참여해 주변국과 공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향후 미국이 주도할 글로벌 통상질서 재편 움직임에 대응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자유무역 확대보다 공급망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CPTPP와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CPTPP와 IPEF가 ‘대체’가 아니라 서로 ‘보완’ 관계로 발전해나갈 여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호철 산업부 기계로봇항공과장은 “RCEP, IPEF와 연계해 CPTPP의 전략적 활용 방안을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며 “기존 정부가 제시해온 글로벌 FTA 허브국가 전략을 넘어 미·중 패권경쟁 사이에서 경제안보와 통상실리를 구현하는 경제통상안보 신전략으로 탈바꿈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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