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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달러'에 이어 미국의 '킹 GDP'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성장률은 갈수록 움츠러드는데 미국만 나홀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킹달러와 에너지 위기로 신음하고 있는데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해외 부동산 원정 투자를 하거나 수입 물가가 떨어지는 것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감세 한 번 잘못 발표했다 죽다 살아난 영국의 위기가 어느 나라에서 재현될 지 모르는데 이 게 달러 패권 강화의 화룡점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산유국들의 협의체 OPEC+ 회의도 미국의 독야청청을 확인시켜줄 가능성이 큽니다. 5일(현지시간)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대면회의를 열지만 그 주제는 침체로 인한 감산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7일에 나올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는 "노동시장은 강력하다"는 미 중앙은행(Fed)의 믿음을 강화시켜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미국의 3분기 GDP는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것이라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끝내고 세 분기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죠.
이번 주엔 '나홀로 성장'을 하는 미국의 양털깎이가 본격화할 지와 영국이 진짜 '탄광 속 카나리아'가 될 지를 중심으로 주요 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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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에서 2.4% 깜짝 성장
지난달 30일 놀랄 만한 지표가 공개됐습니다. 시장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3분기 미국의 GDP 전망치입니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성장률 예측 프로그램인 'GDP 나우'가 발표하는 수치입니다.
GDP 나우가 예상한 미국의 3분기 GDP는 2.4%였습니다. 불과 사흘 전인 지난달 27일엔 3분기 GDP를 0.3%로 예측했습니다. Fed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0.2%로 확 내린 것과 대조적입니다.
GDP 나우의 예측치는 미국 성장률과 관련해선 가장 공신력있는 수치입니다. 팬데믹 이전만 해도 오차가 0.3%에 불과했습니다. 2분기 GDP 전망 때도 월가 은행들은 모두 미국의 플러스 성장을 예상했지만 GDP 나우만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해 정확히 적중했습니다.
경쟁자로 뉴욕 연은의 '나우 캐스팅'이 있었지만 뉴욕 연은은 팬데믹으로 예상이 무의미하다며 지난해 9월 나우 캐스팅을 통한 GDP 전망을 중단했습니다.
성장률 예측의 지존인 GDP 나우가 갑자기 예측치를 8배로 올린 이유는 뭘까요. 그것도 불과 3일 만에 왜 이렇게 돌변했을까요.
GDP 나우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이 발표하는 3분기 개인소비지출이 0.4%에서 1.0%로 증가했다는 게 첫째 배경이었습니다. 그리고 3분기 실질 민간 국내총투자 증가율이 -7.6%에서 -4.2%로 개선된 게 둘째 이유였습니다. 이와함께 GDP 전망에서 순수출 기여도를 1.1%에서 2.2%로 늘린 것도 그 이유로 꼽았습니다.
물론 GDP 나우는 변동폭이 작지 않은 예측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3분기가 끝난 9월말에 공개한 지표라는 점을 주목합니다. 3일(현지시간)에 다시 GDP 나우 수치는 업데이트됩니다. 향후 그 변화가 크지 않거나 오히려 더 커진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경기침체가 끝나고 회복이 본격화하는 신호로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경기침체 우려가 불식된 만큼 금리 인상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봐야 하나요. 이도 저도 아니면 '한 두달 지표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말처럼 일희일비하면 안되는 그런 휘발성 지표로 생각해야 할까요.
와타나베 부인 대체한 스미스 부인
위기 때마다 나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일본 와타나베 부인의 원정 투자 소식입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이용해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는 건 고정불변의 법칙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 때는 엔화 체면을 구기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을 이기기 위해 무제한 양적 완화를 지나치게 오래한 후폭풍입니다.
그 자리는 미국 스미스 부인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킹달러 시대에 엔 캐리 트레이드는 오간데 없고 '달러 캐리 트레이드'만 살아남았습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대표적 투자처입니다. 유로화와 파운드화가 동시에 달러와 1대1로 교환되는 '쌍끌이 패리티 시대'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벌써부터 미국인들이 영국의 요지를 싹쓸이 할 징후는 감지되고 있습니다.
CNBC에 따르면 1년 새 달러로 사는 런던의 주택가격은 20% 낮아졌습니다. 파운드 약세와 영국 주택가격 하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영향입니다.
고가 주택의 할인폭은 더 크다고 합니다. 최고 요지로 꼽히는 첼시와 노팅힐, 나이트브릿지, 켄싱턴, 메이페어 지역의 주택 가격은 8년 전과 비교하면 반값이 됐습니다.
2014년에 영국 파운드 가치는 파운드당 1.71달러 였습니다. 지금보다 부동산 가격도 13% 높았다고 합니다. 최고로 비싼 나이츠브릿지 지역에 500만 파운드로 등재된 주택은 8년 전에 860만달러 였지만 현재는 400만달러입니다.
이런 상황이어서 미국 은행들도 부자고객을 상대로 유럽 부동산을 사라고 호객을 하고 있습니다. 현금을 쥔 미국 부자들이 영국과 유럽 부동산을 못 본 척 지나칠 수 있을까요.
스태그플레이션 가중시킬 OPEC+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산유국들의 회동은 세계 경기침체를 확인시켜주는 시간이 될 전망입니다. 팬데믹 이후 온라인으로만 열리던 OPEC+ 정례회의는 이번에 오프라인으로 개최합니다. 2020년 3월 이후 2년 7개월만의 일입니다. 시장에선 올해 말까지 화상회의로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격적으로 대면회의를 결정했습니다. 너무 촉박하게 결정해 적지 않은 회원국들은 온라인으로 참여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사안이 중요하고 급박하다는 걸 방증합니다. 이 자리에선 그동안 결정했던 것 이상의 감산을 발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에 하루 100만배럴 이상의 감산을 결정할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JP모간은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하루 최소 50만 배럴을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9월 회의 땐 감산량은 하루 10만배럴 이었는데 감산량이 5~10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계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빠른 긴축 때문에 원유 수요 감소로 유가가 떨어지자 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떠받치려는 것입니다. 한 때 120달러가 넘었던 국제유가는 80불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계속 하락했지만 허리케인 영향으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정유시설 등이 파괴되면서 석달 넘게 떨어지던 휘발유 가격은 1주일 전부터 오르고 있습니다.
Fed가 안도할 고용보고서
7일에 나올 9월 고용보고서는 여전히 Fed의 신념을 강화시켜 줄 전망입니다. 신규 일자리 수는 8월에 비해 소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완전 고용에 가까운 3.7%의 실업률은 요지부동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Fed가 9월 FOMC 때 전망한 것처럼 경기후행지표인 실업률은 내년에나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은 괜찮지만 문제는 다른 나라들입니다. "영국이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적이 맞다면 그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요.
극우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는 이탈리아가 될까요. 노르트스트림 가스 누출 등으로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가 오명을 뒤집어쓸까요. 블룸버그통신 보도처럼 통화가치가 폭락한 아시아에서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곳곳이 지뢰밭인 상황을 Fed 인사들도 감지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Fed의 2인자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얘기했습니다. 금리 인상 속도조절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이번 주 Fed 인사들이 각종 연설에서 '미국 인플레이션 잡기' 못지 않게 다른 나라들의 어려운 상황을 언급한다면 시장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국에 가선 인플레이션이 잡혀야 끝나는 게임입니다. 그 때까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 고통을 누군가는 감내하지 못하고 낙오할 수 있습니다. Fed가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Fed put'이 아니라 허리케인 같은 존재가 되는 'Fed Pain'을 생각할 때입니다. 그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인 시대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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