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위기, 임금인상 자제" vs "퇴직자 평생 車할인 안되면 파업"

입력 2022-10-03 17:40   수정 2022-10-12 16:16

“인플레이션은 가계에도 부담을 주지만 기업 실적도 압박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이유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소모적이다.”(쓰루오카 미쓰유키 도요타자동차그룹 노조연합회장)

“75세까지로 연령을 제한한 퇴직자 차량 할인 제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측은 ‘역대급’ 예측 불가 노조위원장을 보게 될 것이다. 파업으로 정면 돌파하겠다.”(홍진성 기아 노조위원장)

임금·단체협상을 벌이고 있는 한·일 대표 자동차 기업의 노동조합이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도요타 노조가 기업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반면 기아 노조는 역대 최대폭의 임금 인상을 약속받고도 ‘퇴직자 차량 평생 할인’을 보장하라며 파업 카드를 꺼냈다.

한·일 대표 車 노조 정반대 행보
3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기아 노사는 임단협에서 퇴직자의 차량 할인 폭과 연령 제한을 두고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12차 본교섭에서 노사 양측은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돌아섰다. 홍 위원장은 “인내의 시간이 끝나면 노조의 명운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를 대상으로 평생, 2년마다, 차량 가격의 30%를 깎아주는 ‘평생 사원증’ 제도를 시행했다. 이번 임단협에서 노사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임금 인상과 함께 퇴직자 차량 할인 대상을 75세 이하로 축소하고, 주기는 2년에서 3년으로, 할인율은 30%에서 25%로 변경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사측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노측은 대신 만 60세 임금을 59세 기본급의 90%에서 95%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담은 만큼 조합원들이 받아들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퇴직자 할인 축소’에 조합원들이 반발하면서 잠정합의안이 투표에서 부결됐다.

최근 2023년 임금협상 준비를 시작한 도요타 노조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도 파업 카드를 만지고 있는 기아와 정반대 태도를 보인다. 니시노 가쓰요시 도요타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노조 정기대회 자리에서 “이미 도요타의 처우는 풍족하고 직원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며 “임금 인상이 ‘베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요타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858만엔(약 8500만원) 수준이다. 기아는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100만원으로 도요타보다 20% 가까이 높다. 더구나 도요타는 퇴직자에 대한 차량 할인이 전혀 없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와 동행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도요타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늙어가는 현대차그룹의 새 뇌관
기아 노조가 퇴직자 복지 축소에 파업까지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배경에는 ‘늙어가는’ 현대자동차그룹 인력 구조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0세 이상 직원 비중이 절반을 웃돌 정도로 고령화하면서 ‘나도 곧 퇴직자’라는 인식이 현장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기아의 50세 이상 직원은 지난해 53.2%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하고 있음에도 50세 이상 직원은 2019년 1만4205명에서 지난해 1만8874명으로 증가했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기준 50세 이상 직원이 전체의 44.2%에 달한다. 현대차 역시 퇴직자가 대거 발생하고 있지만 50세 이상 직원은 2019년 3만1523명에서 지난해 3만2032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퇴직자가 늘어날수록 노조 강성이 약화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오히려 ‘퇴직자 복지’라는 새로운 뇌관이 추가되는 모습이다. 이번 부결은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도 모르는데 퇴직 이후 차량 할인 문제 때문에 당장 성과급을 못 받게 됐다”며 불만이다.

왜 기업이 퇴직자 복지까지 책임져야 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측의 비용 부담이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이유에서다. 역대급 임금 인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은퇴자 혜택까지 유지하려면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출고 대기가 최장 1~2년에 달하는데 노조가 파업에 나서면 피해는 소비자 몫”이라고 지적했다.

박한신/김일규/김형규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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