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 추진으로 힘겹게 활로를 마련한 아시아나항공도 다시 광야에 섰다. 상반기에 이미 부분 자본잠식(잠식률 45%)에 빠진 데 이어 3분기 결산을 앞두고 비상벨이 울렸다. 환율이 100원 오르면 대한항공은 3500억원, 아시아나는 2800억원의 회계장부상 외화평가손실이 생긴다. 저비용항공사(LCC)들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에어부산은 상반기 말 기준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고, 티웨이항공과 진에어는 3분기 대규모 추가 환손실로 완전 자본잠식이 목전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얻었고 제주항공 진에어 등도 영업실적이 급속도로 회복되는 상황에서 날벼락 같은 일이다. 항공사들이 회계상 완전 자본잠식에 이르면 ‘기한이익상실’로 금융권 대출이 일시에 회수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대부분 항공사는 매달 리스료를 물고 항공기를 빌려 쓰는데 완전 자본잠식 시 채권자가 기한이익상실 선언 후 대출을 회수하는 리스 계약이 많아서다. 이런 리스 부채 규모는 아시아나항공만 4조원대이고, 웬만한 LCC도 3000억~5000억원 선이다.
업계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회복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이 반면교사다. 당시 해운업을 팽개치면 안 된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정부는 모호한 구조조정 원칙을 앞세워 정리했다. 그 결과 거대한 해운 네트워크가 한순간에 사라졌고 국가 물류 경쟁력도 심하게 훼손됐다.
기업결합이 진행 중인 미묘한 시점이라 추가 지원이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간산업안정기금 활용도 적극 모색할 때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은 코로나 사태에 대응해 40조원이 조성됐지만 소극적 집행으로 8000억원 정도 투입된 뒤 10조원으로 축소된 상태다. 항공산업은 어느 나라나 우선 지원 대상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미국도 50조원의 대규모 항공업 지원을 추진했다. 때마침 불투명하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을 미국과 영국이 내달 승인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항공업계가 죽음의 계곡을 넘어서는 데 정부가 앞장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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