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에리크 뷔야르(54·사진)의 소설 <7월 14일>(열린책들)은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하면서도 간결한 기록이다. 이 책은 200쪽을 겨우 넘는다. 그런데도 엉성하다거나 부족하다는 느낌이 안 든다. 속이 꽉 찬 듯 묵직하다. 문장 하나하나 낭비 없이 쓰인 데다 세세한 묘사와 사실 전달로 본문을 꽉 채운 덕분이다.
그가 2017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을 때도 그랬다. 2차 세계대전 전야를 다룬 수상작 <그날의 비밀>은 프랑스어판으로 160여 쪽, 한국어판으로 170여 쪽이 전부다. 그래서 그의 작품엔 항상 ‘짧지만 강렬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책은 1789년 4월 23일부터 7월 14일까지 약 3개월을 그렸다. 주인공은 따로 없다. 역사에 희미하게 기록되거나 기록되지 않고 잊힌 민중의 이야기를 담았다. 구두 수선공, 대장장이, 술통 제작공, 담배가게 주인, 빵집 주인, 카페 종업원, 백수건달 등이다.
공식 문서에는 바스티유를 습격한 900여 명과 그중 사망한 98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이 이름들이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작가는 한 프랑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역사가 통계와 목록을 남겼다면, 문학은 지나간 행위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건을 군중에게 되돌려주며, 군중에게 얼굴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대한 서사를 짧은 분량에 녹여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재주다. 그는 현학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사실에 집중한다. 빠르고, 리듬감 있고, 시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편으론 과거와 현재를 부단하게 연결한다. 지난날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환기하려고 한다.
작가는 그 옛날 허름한 술집 테이블에 올라 연설하던 익명의 누군가처럼 이렇게 말한다. “구역질이 날 때, 명령에 울분이 터질 때, 당혹감에 숨이 막힐 때면 일말의 연대감마저 끝내 썩어 문드러지고 만 저 가소로운 대통령 관저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서류철을 훔치고, 문지기를 간지럽히고, 의자 다리를 물어뜯고, 옛 추억을 되살리듯 철통같은 벽 아래에서 빛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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