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위기에 맞섰던 경제원로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을 위기로 규정했다. 지금은 1997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분명 다르지만 어떤 면에선 지금이 그때보다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저성장,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화긴축 등 한국 경제를 좌우할 대외 여건이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복합위기가 증폭되는 가운데 해법을 듣기 위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김중수 전 한은 총재,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등 5명의 경제원로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박 전 총재는 “중국이 (성장률 하락으로 인해) 한국의 수요를 이끌어줄 수도 없는 상태가 되면서 한국은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드는 전환점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인해 한국이 저성장·고금리·고환율 국면을 맞았다”며 “중국의 역할 변화에 따른 성장 위기와 고금리 체제로 인한 경제 위축의 대책을 미리 세웠어야 했는데 정치권이 매일같이 싸움질만 하다가 시기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전광우 전 위원장은 “외채 구조와 외환보유액 같은 것들은 지금이 2008년 위기 때보다 훨씬 낫다”면서도 “중국 경기가 악화됐고 무역적자가 계속되는 데다 국가 재정과 부채 여건이 더 나빠진 점은 과거보다 불리한 요인”이라고 했다. 또 “2008년 위기 땐 국제 공조가 잘 이뤄졌지만 지금은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공조가 잘 안돼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 전 위원장은 “옛날에 하던 단기대책만 생각하거나 고집하면 안 된다”며 “(1997년 외환위기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과거 위기는 단기 패닉이었지만 지금은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함께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나 중국에 비해 한국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 절하율이 더 크고 그래서 무역적자가 이어지는데, 이는 노동개혁을 포함해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시장의 메시지”라고 했다.
김중수 전 총재는 “통화스와프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이기 때문에 단순히 환율이 얼마나 올랐는지만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물가와 환율에 대응하면서 스스로 과대평가해서는 안 되며,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소통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 상황은) 내재적인 문제도 있지만 외부적 요인이 워낙 크게 왔다”며 “문제는 외부적인 (위기) 요인을 거친 다음에 복원력을 얼마나 갖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이번 위기의 해법과 관련해 “우리처럼 자원 없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대내외 균형이 무너질 때는 대외 균형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지금은 무역수지 적자를 비롯한 환율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인 만큼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하고 기업은 그에 걸맞은 고용 안정 노력을 해야 한다”며 “국민들도 전량 수입하는 기름 사용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진/임도원/황정환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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