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제대로 칼 갈았다…산전수전 다 겪은 롯데의 '대반격'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2-10-05 13:45   수정 2022-10-05 15:22


마천루의 저주란 게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미국 뉴욕에 지어졌을 때가 1931년인데
세계 경제 대공황이 발생했죠.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층 빌딩이 부르즈 할리파 인데요,
두바이가 2009년에 짓고
다음해인 2010년 디폴트,
그러니까 부도를 선언했습니다.


한국도 비슷했는데,
신동아 그룹이 1985년
서울 여의도에 63빌딩을 짓고
10여년 뒤인 1997년 해체 됐습니다.
지금은 63빌딩 한화가 갖고 있죠.


롯데가 이후에 마천루를 또 지었습니다.
서울 잠실에 지어진 롯데월드타워죠.
높이 555미터.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
징크스를 피해가진 못했는데요,
이거 지어진 2017년 롯데는 중국의 사드 보복 당하고
마트, 슈퍼, 백화점 문을 전부 닫습니다.
투자금액 10조원 거의 다 잃었습니다.

이건 사실 시작에 불과합니다.
2018년엔 신동빈 회장이 '구속'됐습니다.
그 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있었죠.
롯데가 아사히 맥주부터 유니클로, 무인양품 같은
엄청 많은 일본 브랜드 사업을 하고 있어서
타격이 컸습니다.
여기에 검찰 조사, 세무 조사, 경영권 분쟁.
기업으로서 겪을 수 있는 수난이란 수난을
최근 10년 간 다 겪었습니다.


하지만 롯데는 꿋꿋하게 버텨내고,
살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 길이 막히자
동남아와 미국으로 갔고,
유통에서 길을 잃고 헤매자
화학, 바이오 같은 새로운 분야에서 기회를 찾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신동빈 회장을 옭아 맸던
최순실 뇌물 사건 관련 집행유예가
8.15 특사 사면으로 다 풀렸습니다.
주식으로 치면 최저점, 그러니까 바닥을 찍은거죠.

대단한 기업의 만만한 성공 스토리
대기만성's 이번 주제는
유통 왕국에서 제조 왕국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롯데입니다.


롯데는 과거 유통을 주력으로 했죠.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은 껌, 초콜릿 같은
식품 사업으로 시작해서
백화점, 마트, 슈퍼 등 유통으로 확장해
국내 재계 순위 5위 그룹을 일궜습니다.
유통왕국 롯데를 만든 신격호 회장은
99세의 나이에 202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아들 신동빈 회장이 롯데를 이끌고 있죠.


신동빈 회장이 1955년생, 칠순을 바라보는데
롯데의 온전한 총수가 된 것은 사실 몇 년 안 됐습니다.
나이 70 넘어서까지 왕세자로 불렸던
영국의 찰스 왕세자 느낌도 '조금' 있습니다.


어쨌든 신동빈 회장은 요즘 그룹을 자기 스타일 대로
완전히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우선, 유통 사업에서 한 발 뒤로 빼고 있어요.
쿠팡 네이버 이런 온라인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데 반해,
롯데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투자를 안 하진 않는데, 어정쩡하게 하고 있죠.
경쟁자인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 인수하고
돈 쏟아 붓고 있는 것과도 차이가 좀 있습니다.


신동빈 회장 스타일 때문인데요.
신동빈 회장은 숫자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ROE라고 하죠, Return on Equity.
한글로 하면, 자기자본이익률.
내가 자본을 100을 투자하면
몇 년 안에 이 돈을 이익으로 회수할 수
있는지, 이게 ROE죠.
신동빈 회장은 ROE를 중요하게 본다고 합니다.


신격호 회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청사진을 그리고
이걸 실현하는 데 탁월한 사업가였다면,
신동빈 회장은 투자했을 때
그 돈을 얼마 만에 뽑아 낼 수 있는 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은행가형 기업가 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죠.
대학원도 금융이 유명한 컬럼비아 MBA 나왔습니다.
워런 버핏이 나온 학교죠.
또 노무라증권에서 증권맨으로 일도 했습니다.
신동빈 회장 처럼 금융 백그라운드를 가진 경영자 입장에선
온라인 쇼핑은 ROE가 안 나오죠.
국내 온라인 쇼핑 사업은 전부 적자거든요.
이런 판에는 안 들어간다. 성과가 가시화 되면 그 때 하겠다.
롯데는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동빈 회장은 대신에
투자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ROE가 높은 사업을 눈여겨 본다고 합니다.
롯데가 2022년 5월에 발표한 투자 계획을 보면
신동빈 회장의 스타일이 잘 나옵니다.
앞으로 5년 간 37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그 중 41%가 신사업에 할당 됐습니다.
이 신사업이란 게 매우 롯데 스럽지 않죠.
바이오 사업이 그렇습니다.


바이오 한다니까
획기적인 신약 같은거 개발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런 뜬구름 잡는 사업은 전혀 아니고,
제약사에서 수주를 받아서,
약을 대신 만들어 주는 사업부터 합니다.
이 분야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이런 국내 회사들이 잘 하고 있죠.
처음 시작해서 바로 하긴 어려우니까
롯데는 최근 미국에서 공장 하나를 인수했어요.
BMS란 제약사가 원래 쓰고 있던 공장인데,
이 공장을 롯데가 운영하고
BMS가 일감을 주기로 했습니다.
마진은 얼마 안 되겠지만
이런걸로 우선 몸을 풀어야겠죠.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바이오 의약품 공장을
자국에 지으라고 압박하고 있는데,
롯데는 일단 기반은 마련 했네요.
롯데는 또 국내에도 1조원 들여서
비슷한 바이오 의약품 공장 짓겠다고
여기저기 땅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신규 사업 중에 또 주목할 게 배터리 소재 사업인데요.
삼성 LG SK 포스코 같은
국내 주요 기업들이 이미 선점을 한 시장이지만,
늦게라도 해야겠다 면서
양극박, 음극박, 동박
이런 배터리 소재 사업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사업 계획을 보면 이런게 많아요.
롯데 스럽지 않은 것.
청정 에너지인 수소를 암모니아에서 뽑아내고
이렇게 얻어진 수소를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짓고.
이런 식입니다.
반면에 매우 롯데 스러운 식품, 유통, 호텔
이런 데 투자하는 건 별 게 없습니다.
그나마 한다는 게 백화점, 마트, 호텔 리모델링 하는 거에요.
그냥 현상 유지 정도 하겠다는 겁니다.


롯데가 투자를 많이 하기로 한 분야인
배터리 소재나 바이오, 수소 에너지는
유통 하고는 다르게 '장치 산업'이죠.
공장 크게 지어서 레시피 대로 잘 만들고,
불량 안 나게 해서 시간 맞춰 납품하는 게 생명입니다.
이거 한국에서 가장 잘 하는 곳이 삼성 LG 인데요.
사실 롯데도 그동안 꽤 실력을 길렀습니다.
화학 사업의 경우 LG화학에 가려서 그렇지,
국내 2위 화학사이고,
에틸렌 같은 특정 분야에선 1등이에요.
글로벌로 봐도 톱 10 안에 듭니다.


신동빈 회장은 '유통, 호텔, 면세점 같은
서비스 사업으론 그룹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삼성, LG, 현대차 처럼
제조, 장치 산업으로 가야 ROE도 나오고
그룹도 한 단계 성장한다 이렇게 본 것이죠.
특히 한국 처럼 작은 나라에서
내수에 집착하는 것은
답이 안 나온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신동빈 회장이 이렇게 신사업 벌이는 것은
자기 업적을 쌓으려는 것도 있습니다.
신격호 회장이 다 일궈 놓은 데 밥 숟가락 얹어서
그대로 하면 잘 해도 본전이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아빠 찬스' 말고,
딱히 성과를 내세울 게 없어서,
'경영자로서 검증이 덜 됐다'
이런 말을 듣고 삽니다.


사실, 장치 산업은 신격호 회장이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매우 아쉬워 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롯데 창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신격호 회장이 정부에
철강 사업 하고 싶다고 건의 했습니다.
그 때가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때였는데요.
한국이 일본 처럼 산업화 되면
철을 많이 필요로 하니까,
이걸 롯데가 하겠다 이렇게 제안했어요.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롯데에 사업권 안 줬죠.


장치산업은 정부가 육성하고 있는 분야기도 합니다.
전략 산업이라 불리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바이오
이런 게 다 장치 산업이죠.
반면 유통, 서비스 산업은 정부가 육성을 잘 안 해주죠.
오히려 인허가 사업이라 눈치를 봅니다.
백화점, 마트 지으려면 지자체 승인도 받아야 하고
시장 상인 분들과 사전 협의도 해야되죠.
대규모 복합 쇼핑몰 지을 땐
늘 특혜 논란이 있었습니다.

신동빈 회장이 과거에 구속까지 됐던 것도,
인허가 사업인 면세점 때문이었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사업권을 청탁하고,
그 댓가로 최순실이 주도한 재단에
뇌물로 70억원을 줬다. 이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 보면
삥 뜯기고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
치를 떨었을 겁니다.
다시는 특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겠죠.


신동빈 회장이 주력하는 또 다른 하나가 주가 입니다.
롯데는 사실 주식 시장하고 정말 안 친해요.
상장 기업이 몇 개 없기도 했지만,
상장을 했어도 주가는 신경도 안 썼습니다.
롯데칠성 같은 회사는 예전에
주가가 100만원이 넘어서
거래도 잘 안 되는 주식이었어요.
이걸 그대로 수 십년 간 방치했습니다.
상장한 지 46년 만인 2019년에
'액면분할'이란 것을 해서
주식을 잘게 쪼개 거래를 터줬죠.
이후에 거래 잘 되고 있습니다.


롯데는 요즘 배당도 많이 줍니다.
배당은 대표적인 주주친화 정책이죠.
롯데는 각 계열사가
순이익의 최소 30%를 배당 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고 있습니다.
신격호 회장 시절엔 배당 거의 안 했죠.
시가 배당률도 꾸준히 올라
작년인 2021년 계열사 평균 3.1%를 기록 했어요.
주가가 1만원이면, 310원 배당 줬다는 뜻이죠.
은행 이자 이상으로 준겁니다.
2018년에는 이 수치가 2.5%에 불과했습니다.
신동빈 회장은 요즘 계열사 임원들에게
대놓고 주가관리 하라고 합니다.
결국 시장에서 평가 받는 게 객관적인 가치인데,
'우리끼리 잘했다고 해봐야 뭐하냐' 이거죠.
경영자로서 맞는 판단이라고 봅니다.


주주 친화정책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게
사실, 대주주인 신동빈 회장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를 비롯해
6곳의 롯데 상장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데요.
작년에 받은 배당 총액이 310억원이나 됩니다.
신격호 회장의 유산이
드러난 것만 1조원 이상이죠.
이 유산에 대한 상속세를
10년 간 분할해서 납부해야 하는데,
이 세금 내려면 신동빈 회장도
배당 많이 받아야 합니다.


또 롯데가 신규사업으로 하는
바이오, 배터리 소재, 수소 이런 아이템은
투자자들이 매우 좋아 합니다.
식품, 유통, 호텔 이런 사업보다
PER, 그러니까 주가수익비율을 훨씬 높게 쳐줍니다.
똑같은 이익을 내도 비싸게 주식을 사주죠.


신동빈 회장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룹의 화력을 장치 산업에 집중하겠다.
롯데의 간판은 앞으로 이런 사업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또, 롯데 계열사 주가관리 잘 해서
주식 사면 돈 벌게 해주겠다.
개인적으로 롯데가 야구에도
투자를 해서 성과를 내면 좋겠습니다.
장치산업에 주력하는 롯데, 눈여겨 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김윤화 PD
촬영 김윤화·박지혜·예수아 PD
제작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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