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 학창 시절 매일을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았어요. 저는 비록 경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제 아이마저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아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여성 전모씨(28)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전씨는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10대·20대 시절을 지냈는지 내가 제일 잘 안다"며 "내 자식이 입시·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출산을 하면 힘든 경쟁에 놓일 아이와 육아에 나설 나 자신 모두가 함께 불행해질 것으로 확신하기에 출산을 단념했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펴낸 '2022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한국 청년세대가 마주한 이 같은 경쟁적 사회 구조를 '황금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라고 표현했다. 명문대 진학과 취업이라는 황금티켓을 따기 위해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놓인다는 게 OECD의 진단이다. OECD는 "대기업이나 정부에 취업하는 데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매우 큰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얻을 이익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에 한국은 교육 및 입시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황금티켓 신드롬이 여성의 출산 의지를 꺾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는 "한국에서 자녀가 있는 여성의 비정규직 고용 가능성은 자녀가 있는 남성보다 3배 높다"며 "여성은 고임금 정규직에서 중소기업의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강등되는 높은 비용을 치른다는 점에서 경력과 가정 사이 선택을 강요받고, 이는 젊은 여성이 가족 형성을 미루고 평생 갖는 자녀 수를 줄였다"고 꼬집었다.
연구를 이끈 장대익 가천대 창업대학장(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저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을 통해 "청년 복지라는 명목으로 각종 학원비 지원과 같은 정책은 오히려 청년의 경쟁에 대한 지각을 높일 수 있다"며 "만일 (정부가) 청년이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복지 비용을 유연하게 지출했다면 저출산이 이렇게까지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청년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보다 경쟁적으로 인식하고,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고우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교수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비중이 9.27% 이상이면 합계출산율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지난해 서울에 거주하는 인구는 한국 인구의 18.4%를 차지했다. 인천과 경기를 합친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치열한 경쟁 구조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직시하고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 모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어느 나이에는 반드시 서울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적 규범'과 이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수도권에 대한 인구 편중을 높이고, 저출산을 심화시켰다"며 "경쟁지각을 완화하기 위해선 사회적 규범을 청년에게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OECD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를 완화하되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을 강화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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