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산 종합 대책을 처음 마련한 2006년만 해도 지원 대상은 영유아와 자녀 양육에 한정됐다. 하지만 2016년 청년 일자리와 주거 예산이 저출산 대책에 포함되더니 2018년부터 모든 세대의 삶의 질 보장이 저출산 대책이 돼버렸다. 그 결과 2006년 2조1000억원대였던 저출산 예산은 지난해 46조6000억원대로 21배나 늘었지만 이 기간 출산율은 1.13명에서 0.81명으로 추락했다. 역대 정부가 저출산 대책과 큰 상관 없는 사업들까지 저출산 예산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으면서 예산만 늘었을 뿐 실속 있는 저출산 대책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자산 형성을 돕는 내일채움공제 사업(1조3098억원), 디지털 분야 미래형 실무인재 양성(3248억원) 사업 등도 논란이다. 아동, 부모와 직접 관련이 없는 ‘청년 대책’이란 점에서다.
약물 투여를 통해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된 사업 중 하나다. 대법원 판결을 반영해 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지만 이를 저출산 대책으로 언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첨단무기 도입을 통해 군사력을 보강하는 예산 987억원도 저출산고령사회 시행계획에 포함돼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군 입대 인구가 줄어드는 걸 감안해 첨단무기를 늘리겠다는 사업인데, 이 역시 출산을 늘리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엔 더 황당한 사업도 많았다. 2006~2010년에는 템플스테이 등 종교문화행사 지원 사업이 저출산 예산에 포함됐다. 가족의 여가생활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다. 2016~2018년에는 수출 중소기업 지원이 저출산 예산으로 둔갑했다. 작년엔 창업성장기술개발 사업(1200억원), 민관 공동창업(428억원), 게임 개발자 육성, 만화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부천웹툰융합센터 구축 등 청년지원사업 다수가 포함됐다.
각종 사업이 저출산 대책에 포함되면서 저출산 대응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저출산 대책이 처음 발표된 2006년 2조1445억원에서 작년엔 46조6846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저출산 예산은 50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저출산고령사회 예산 중 저출산과 가장 관련 있는 가족 분야 예산은 19조2444억원으로 전체의 24.4%에 그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지출 비중은 2017년 기준 1.3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4%의 절반 수준이다. 프랑스와 독일, 스웨덴 등 주요국에 비해선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정부가 저출산 해소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업까지 저출산 예산에 포함하며 ‘예산 부풀리기’를 하는 사이 출산율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2006년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정부가 영유아 등 직접 지원에 집중하던 시기에 소폭 상승해 2012년 1.30명까지 높아졌다. 하지만 2015년 1.24명 이후 급감해 올 2분기에는 0.75명까지 떨어졌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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