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앞에 이불 덮고 누웠다…'기현상' 벌어진 까닭 [이미경의 인사이트]

입력 2022-10-07 10:35   수정 2022-10-07 11:02


지난 6일 오후 3시경, 현대백화점 판교점 5번 게이트 앞에 20여 명의 사람들이 편한 차림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벽까지 이곳에서 버티기 위해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다. 일부는 캐리어, 베낭 등 짐을 한 보따리 꾸리고 있었다. 아예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듯 운동복 패션에 슬리퍼를 신고 있거나 이불을 덮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8년 만의 신규 점포에 '이틀 전 오픈런' 기현상
판교점 앞에 늘어선 사람들은 8년 만에 국내 신규 점포를 내는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서기 위한 대기행렬이다. 8년 만의 신규 매장 오픈 소식이 알려지며 인기 제품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오픈런 행렬이 이틀 전부터 벌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에르메스는 7일 경기도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신규 매장을 오픈했다. 2014년 잠실 롯데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국내 10번째 매장을 낸지 8년 만의 신규 출점이다. 에르메스가 서울이 아닌 경기권에 매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규모는 약 580㎡로 국내 백화점 입점 매장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밤부터 대기행렬에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박모 씨는 "요즘에는 3~5시간 대기 알바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틀에 걸쳐 장기간 대기해야 한다길래 놀랐다"며 "시급도 평균(1만원)대비 높은 1만5000원"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기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구매자가 아닌 리셀러로부터 시급을 받는 '대기 알바생'이었다. 또 다른 대기 알바생 A씨는 "내 명의로 물건을 구매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 줄을 서다가 매장 오픈시간이 임박하면 리셀러와 바톤터치를 한다"며 "구매 품목 등 구체적인 얘기는 들은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도입한 '리셀 금지 조항' 효력 없을 듯

리셀러를 대신해 줄을 서는 아르바이트생이 많다는 건 최근 에르메스가 도입한 '리셀 금지 조항'이 사실상 효력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 3월 에르메스코리아는 거래 약관에 재판매 관여 금지 조항을 포함했다. 약관에는 '에르메스 제품은 최종소비자인 개인 또는 법인에만 판매되며 모든 재판매자 또는 이들을 대리한 중개인에게는 판매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에르메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이 약관에 사인을 해야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리셀 플랫폼 업계에선 제품 구매자가 리셀러를 통해 구매한 상품을 에르메스 매장에 가져가지 않는 이상 어떤 상품이 누구에 의해 되팔기 됐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해당 조항이 리셀 현상을 막는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리셀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에르메스는 자사 제품 구매 이력이 많은 소비자에게 인기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에르메스 인기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 중 구매 이력이 없는 사람은 결국 리셀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신규 점포를 낸 만큼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 역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에르메스코리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에르메스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5275억원으로 전년(4191억원) 대비 25.9%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1705억원으로 전년(1334억원) 대비 27.8% 증가했다.

한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고임금 정보·기술(IT)기업이 몰려있는 판교상권에 위치한 만큼 구매력이 큰 소비자가 많이 방문한다"며 "에르메스코리아의 매출은 물론이고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매출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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