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불안정하자 예민해진 시장…"혼란 속 민감도 급증"

입력 2022-10-06 20:16   수정 2022-11-04 00:03

올해 들어 미 중앙은행(Fed)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며 세계 금융시장에 변동성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강(强)달러 현상으로 인한 자본이탈을 막으려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끌어 올리며 각종 금융상품에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의 실책으로 흔들린 금융시장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기금과 미국 국채 등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금융자산에 위험신호가 포착됐다고 진단했다. 지난주 영국 금융시장에 나타난 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3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하자 파운드화는 급락하고 영국 국채 금리가 폭등했다. 금리가 인상되면 국채 가격이 내려간다. 한때 영국 국채는 부채 국가로 알려진 그리스와 이탈리아 국채 가격을 밑돌았다.

영국 국채 금리가 폭등하자 영국 퇴직연금이 채택한 부채연계투자(LDI) 전략이 위험성을 증폭시켰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분산하거나 이익을 증폭하기 위해 사용된다. 영국 퇴직연금의 LDI는 저금리로부터 퇴직연금을 보전하며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금리변동 시기에는 LDI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하지만, 영국 퇴직연금 규제당국은 각 연금이 LDI를 채택하도록 권고했다. 중앙은행 긴축으로 금리가 오르자 퇴직연금은 손실이 발생했다. 손실을 상쇄할 수 있는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마진콜(추가증거금 요구)에 부닥쳤다. 이를 위해 많은 퇴직연금이 영국 국채를 대량 매각했고 다시 국채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펼쳐졌다.

영국발 금융위기가 벌어질 뻔했지만 지난 3일 트러스 총리가 감세안을 철회한다고 선언하며 위기가 종식됐다. 다만 LDI에서 비롯된 위험성이 투자자들에게 각인됐다. 미국 컨설팅 업체 윌리스 타워스 왓슨은 “올해 들어 관리하는 미국 기업 퇴직연금이 마진콜로 추가 충당한 금액이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미국 국채도 위험 커져
현재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미국 국채다. 2007년 이후 미국 국채 유통량은 무려 332%나 늘어난 26조 2000억달러에 달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자국이 발행하는 화폐로 채권을 발행한다. 회사채나 신흥국 국채처럼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작다. 다만 달러 발행으로 미국 국채를 상환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게 된다.

은행과 규제당국에선 미국 국채는 월가가 소화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량이 과도하게 불어난 탓에 시장 기능만으로 통제가 안 된다는 설명이다. 인플레이션과 Fed의 금리 인상이 국채 변동성을 키우며 시장 기능을 약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에선 Fed가 지정한 은행(프라이머리 딜러)이 시장 운영을 위해 미국 국채를 매매한다.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프라이머리 딜러가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전체 유통량의 1%를 밑돈다. 민간 투자자들이 원하는 규모, 속도, 가격에 국채를 사거나 파는 게 까다로워졌다는 평가다. 전반적인 신용 시스템이 지니는 중요성이 약화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채를 매매하는 시장이 약화하자 Fed의 권한도 축소됐다. 지난 2020년 3월 Fed가 경제를 부양하려 금리를 인하하자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채권을 매각한 것. 결국 Fed가 개입해 국채를 사들여야 했다.

JP모건에 따르면 현재 시장 상황은 팬데믹 봉쇄가 심각했던 2020년 4월 때처럼 악화했다. 파이퍼샌들러는 2010년 이후 최악의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개최 직전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시간 사이에 연 3.55%에서 연 3.7%로 급등했다. 시장 신뢰가 떨어지자 정책에 관한 민감성이 극대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파이퍼샌들러의 로베르토 펄리 애널리스트는 "쉽게 거래되는 미국 국채와 다른 금융상품 사이의 격차가 증대하고 있다"며 "채권 거래조건이 악화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하는 기능이 붕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겁쟁이가 된 투자자들
미국 국채의 주요 매수자였던 은행과 해외투자자도 투자를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미국 상업은행의 정부채 보유량(국채·주담대 제외)은 2020년부터 2년간 7500억 달러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소비가 줄고 예금 유입량이 증대돼서다. 올해 예금이 머니마켓펀드(MMF)로 몰리며 6월 이후 700억 달러가량 줄었다.

미국 재무부 국내금융 담당 차관인 넬리 량은 지난달 "감소한 시장 유동성은 우리가 시장 위험 모니터링에서 주시해야 할 일일 점검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마크 카바나 미국 금리전략책임자는 "현재 미국 채권시장에서 걱정하는 것은 어떤 유형의 대규모 충격도 미국 국채금리를 급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각종 경제 지표에 민감해지기 시작했다. WSJ은 시장이 경제 지표에 크게 민감한 데는 이론적으로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Fed가 지표를 주시하고 있어서 금리 자체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과도하게 커졌다.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는 간접적인 지표도 시장에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유동성은 또 다른 난제다. 변동성이 불어난 데다가 통화 긴축 정책이 결합하며 트레이더와 투자자들이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바닥났다. 매수와 매도 불일치로 가격이 수요·공급과 달리 더 큰 폭으로 흔들린다는 지적이다.

공포가 커지며 불안정성도 증폭됐다. 단기적으로 시장에 더 집중하고 민감하게 만든다고 WSJ은 분석했다. 지난주 영국 국채 시장에 문제가 생겨 지원받아야 했다. 최근에는 크레디트스위스(CS)에 대한 위기론이 퍼졌다.

헤지펀드 롱테일 알파의 설립자이자 최고 투자책임자(CIO)인 비너 반살리는 "한 번의 트윗이나 한 번 부는 바람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이런 환경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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