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82·사진)에게 돌아갔다. 2014년 파트리크 모디아노 이후 8년 만의 프랑스인 작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최다 배출국인 프랑스는 이번 경사로 전체 수상자가 16명으로 늘었다.
노벨문학상 발표 기관인 스웨덴 한림원은 6일 에르노를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그의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 설명했다. 에르노는 스웨덴 공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단한 영광이자 대단한 책임감”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에르노는 1940년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의 이브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카페와 식료품점을 운영했는데, 에르노는 가난하고 고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엌에서 몸을 씻었고, 가정 폭력이 만연했다.
소설 <부끄러움>에 나오는 첫 문장 “6월 어느 일요일 낮 12시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그가 12세 때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가난한 하층민 딸이지만 중산층 이상이 다니는 기독교계 사립학교에 다니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작가가 부끄러운 존재를 자각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는 루앙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중등학교 교사 등의 자리를 거쳐 이른 나이에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해 강단에 섰다. 창작은 좀 늦었다. 1974년 34세가 되던 해 자전적인 소설 <빈 옷장>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자전적이다. 1984년 르노도상 수상작인 <남자의 자리>는 하류층 노동자였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한 여자>는 어머니의 삶을 그려냈다.
<단순한 열정>은 자신의 연애담인데, 당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불륜 스토리여서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 40여 년간 발표한 20편 작품이 대부분 자전적 고백이며 낙태, 실연, 질투 같은 말하기 어려운 소재를 그대로 드러냈다. 자신과 주변 이야기를 너무나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한 그의 소설들은 다소 불편하다는 비판과 함께 종종 논란에 섰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에르노의 작품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예리하게 통찰한다는 호평를 받는다. 신수정 문학비평가는 <부끄러움>에 실은 추천사에서 “자신을 부끄러움의 영역으로 봉인해버린 세계의 허위를 기록하는 것을 ‘글쓰기의 절대 조건’으로 내세우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근본적이라 위태롭고, 그런 만큼 지나치게 고독하다”고 했다.
<사건>을 번역한 윤석헌 번역가는 “에르노는 누구도 쓸 수 없는 글을 쓰는 용감하고 대담한 작가”라며 “이 작가의 특징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쓰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문제로 승화시킨다”고 했다.
에르노는 그간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로 거론돼 왔다. 2003년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된 프랑스 문학계 거장이다. 소설, 미발표된 일기 등을 수록한 <삶은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 작가의 작품을 묶어 내놓는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됐다.
국내에는 <빈 옷장>(1984Books), <단순한 열정>(문학동네), <사건>(민음사) 등이 출간돼있다. 이 중에서 <사건>은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으로, 프랑스에서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 자신의 임신 중절 경험을 담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칼 구스타프 3세 국왕이 1786년 설립한 왕립 학술원이다. 1901년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올해까지 119명이 받았다. 수상자 국적은 프랑스가 16으로 가장 많고, 미국(13명)과 영국(13명), 독일(9명)이 뒤를 잇는다.
아시아에서는 일본(2명)과 중국(1명), 인도(1명)가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000만크로나(약 13억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임근호/구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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