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대규모 원유 감산 카드를 꺼낸 건 국제 유가가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지난 6월 배럴당 122달러를 넘던 서부텍사스원유(WTI)는 4일(현지시간) 기준 고점 대비 29% 추락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123달러를 웃돌던 6월 고점보다는 여전히 26% 낮다. 서방이 오는 12월 도입하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 등 다른 변수도 적지 않다.
외신에 따르면 OPEC+의 두 주축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감산을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러시아 편을 들어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러시아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제재에 맞서 에너지 공급을 줄이고 있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에 유리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밥 맥널리 라피던에너지그룹 회장은 “OPEC+ 산유국은 서방 국가들이 도입하려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가 나중에 다른 국가들에도 적용될 것을 염려한다”고 말했다.
OPEC+ 결정과 별개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량을 추가로 줄일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RBC캐피털마켓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자체적으로 생산량을 줄여 OPEC+의 감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OPEC+의 감산 전망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업적으로 선전하는 자국 내 휘발유 가격 안정세가 깨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OPCE+ 회원국들에 “원유 감산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재무부가 러시아산 원유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면 신흥국과 50개 저소득 국가에서 연간 1600억달러의 원유 수입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과 인도 등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가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면 원유를 팔지 않겠다고 러시아가 엄포를 놓고 있어서다.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인 러시아가 공급을 줄이면 국제 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민 나세르 아람코 최고경영자는 이날 FT에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사실 세계 원유 시장은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며 “중국이 코로나19 규제를 완화하면 글로벌 원유 비축량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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