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대우조선 M&A에서 재확인된 유명무실 국가계약법

입력 2022-10-06 16:24   수정 2022-10-07 08:54

이 기사는 10월 06일 16: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권이 한화그룹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유명무실한 산업은행의 자산매각 절차가 다시 한번 도마위에 올랐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자산을 매각할 때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번 거래가 지분 매각이 아닌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신주를 한화가 인수하는 구조인점을 내세워 해당 법률을 적용하지 않고 물밑에서 거래를 마무리했다.

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국가계약법 7조에 따라 보유자산을 매각할 땐 복수의 후보를 대상으로 공개경쟁입찰방식을 택해야 한다. 공개매각 절차가 두 차례 무산된 이후에야 산업은행은 비공개 수의계약 형태의 M&A를 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과정에서 경쟁입찰 대신 한화그룹과 물밀접촉을 통해 비공개 방식으로 거래를 마무리 했다. 산업은행은 신주 발행 형태의 거래구조를 고안해 법률이 정한 경쟁입찰 방식을 피할 수 있었다.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55.7%)의 매각(구주매각)이 아닌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신주를 한화그룹이 인수하는 형태인만큼 국가계약법상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산업은행은 이외에 다수의 자산매각에서도 국가계약법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9년 현대중공업으로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던 과정이 대표적이다. 산업은행은 보유중인 대우조선해양 지분 전량(55.7%)를 현대중공업그룹이 세울 중간지주사에 현물출자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은 그 대가로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신주를 인수하는 구조로 거래를 진행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매각하는 거래가 아닌 '투자'이고 상법상 현물출자를 택해 국가계약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펴 M&A를 강행했다. 양사의 합병은 EU의 기업결합 불허로 결국 무산됐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경영권 지분 50.75%를 매각하는 과정도 국가계약법을 회피한 사례로 꼽힌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이 본격화되기 전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를 세워 해당 지분을 넘겼다. 대우건설의 본입찰엔 최종 인수자인 중흥건설과 부동산개발업체 DS네트웍스 컨소시엄이 참여하며 경쟁입찰 형식은 갖췄지만 산업은행이 중흥건설의 요구에 매각가를 깎아주기 위한 '재입찰'을 단행해 논란이 됐다. 당시 중흥건설은 결국 재입찰을 거쳐 처음 제안가격인 2조3000억 대비 2000억원을 낮춘 2조1000억원에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절차의 공정성이 논란에 서자 산업은행은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위해 세운 PEF의 LP투자자일 뿐 해당 펀드 운용사(GP)인 KDB인베스트먼트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자본시장을 들어 해당 거래가 국가계약법이 정한 절차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18년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중국 더블스타로 넘기는 과정에서도 산업은행은 인수대금인 6463억원이 전부 신주발행 형식으로 금호타이어에 유입돼 국가계약법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활용했다. 경쟁입찰 대신 단독협상으로 거래를 마무리했다. 박삼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겠다 나서며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유의미한 제안을 하지 못하며 중국 더블스타가 새 주인이 됐다.

IB업계에선 국내 자본시장이 점차 고도화되며 M&A 및 투자 방식이 다양해졌지만 법률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들로 지적한다. 업계에선 산업은행이 단행한 다수의 구조조정 거래 중 대우증권 매각이 유일하게 잡음없이 국가계약법이 규정한 공개 경쟁매각을 따라 마무리한 거래로 평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또다른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대주주인 한국항공우주(KAI)의 민영화 과정에서도 국가계약법을 회피한 거래구조가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시장에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이후 KAI의 경영권 확보까지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수출입은행과 한화 측 모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속도전을 이유로 매각절차에 돌입할 경우, 산업은행의 사례에서 보이듯 공개매각으로 매각가를 끌어올리는 방법 외에 한화와의 단독 접촉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게 IB업계의 관측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이 기업의 경영권 매각도 정부나 공공기관이 보유한 부동산이나 자산들을 파는 것처럼 일률적으로 규정했다보니 회피할 방법이 무궁무진한 상황"이라며 "국가계약법의 초점을 공정한 절차에 둘 것인지 적기 매각 성사에 둘 것인지 판단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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